47번 국도를 타고 포천 방향으로 내려오다 보면 성모병원 지나 축석령 넘기 전 왼편 산자락에 ‘발해고’의 저자인 유득공 선생님의 묘소가 있습니다. 이러한 광릉숲을 정조대왕께서 승지 서영보에게 이르기를 “이 축석령은 백두산(白頭山)의 정간룡(正幹龍)이요, 한양(漢陽)으로 들어서는 골짜기이다. 산의 기세가 여기에서 한 번 크게 머물렀다가 다시 일어나 도봉산(道峰山)이 되고 또 골짜기를 지나 다시 일어나 삼각산(三角山)이 되는데, 그 기복(起伏)이 봉황이 날아오르는 듯하고 용이 뛰어오르는 듯하여 온 정신이 모두 왕성(王城) 한 지역에 모여 있다. 산천은 사람의 외모와도 같은 것이어서 외모가 좋은 산천은 기색(氣色) 또한 좋다”고 조선왕조실록에 전합니다.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광릉숲을 소개한 대부분의 글은 생태학적인 측면에서 쓰여졌지만 우리 역사 속에서 차지하는 광릉숲의 정신문화적인 측면은 매우 높습니다. 이러한 광릉숲은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사람들에게는 기회입니다. 서산에 지는 해를 붙들어 둘 수 없고, 아침을 밝히는 태양은 어김없이 동트는 법이니까요?
또한 이해조 선생님은 소설 “소학령”에서 백두산에서 떨어진 산이 천지만협으로 갈라져 십삼도 성지명구를 수없이 배포하였는데, 그 중 한 가닥이 남편을 바락 줄멍줄멍 나오다가 포천 축석령에 이르러 두 가닥으로 나뉘어 한 가닥은 삼각산이 되고, 한 가닥은 수락산이 되느라고 과협을 연해치는데 그 과협 틈틈이 사람 사는 동리가 있는 중, 그 중 산세가 거하고 수목이 울밀하여 장작불에 먹는 동리는 송산이라.
산이 어찌 넓은지 열두 동리나 되는 고로, 초행으로 가는 사람은 집을 용이히 찾지를 못하더라. 그 동리 인민들이 농사하는 여가이면 집집이 말을 매고 나무장사를 하여 모두 걱정 없이 생활을 하는데, 광릉숲의 축석령과 송산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자산과 유득공 선생님께서 ‘발해고’를 저술한 정신을 기반으로 경기도가 의정부시와 포천시 그리고 남양주시 등의 예술단체에 정조대왕 능행차 복원을 지원하고, 이해조 이광수 문학공원과 둘레길을 만들고 광릉숲 둘레길 길동무 프로그램을 운영해 진정한 ‘유네스코 생물권공원 광릉숲’으로 디자인 하면 좋을 것입니다.
김창호 / 포천신문 시민기자단 고문, 초대 단장 역임, 광릉21포럼(cafe.daum.net/k255) 대표 저서 소설집 <광릉숲>, 2인 시집 <너랑 함께라면 그곳이 어디든 내겐 천국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