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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진의 연재수필] 아빠 어렸을 적에 (8회) 연명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4년 10월 21일


유월이 되자, 엄마는 정말로 끼니를 이을 낱알도 푸성귀도 모두 바닥났기에 걱정이 태산입니다.


아직 덜 여문 밀과 보리를 베어다 가마솥에 볶아 절구에 찧어 연명하여 보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나 다름이 없습니다.


바른번덩이며, 방아골, 재미난골 등의 산에서 꺾어 온 삽추싹, 고비, 고사리, 잔대싹, 꿩의다리, 망초대, 할미밀빵, 취나물, 곰취, 다래순, 광대싸리순 등을 찬 겸 양식 삼아 먹었지요. 갓버섯이며, 싸리버섯, 표고버섯, 석이버섯 등은 우리 엄마를 위한 부엌 요리 향연의 조연급이었지만 노오란 아카시아 버섯은 정말 주연 급에 속합니다.


노오란 아카시아 버섯이 흐드러지게 열린 나무 등걸을 만나면 횡재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엄마는 푸성귀만으로 여섯 입이나 되는 끼니를 해결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무리 궁리를 하여도 방도가 나지 않는 엄마는 급기야 학교를 찾아가 담임선생님인 조성구 선생님께 사정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선생님! 이런 말씀드리기 정말 죄송하네요. 우리가 끼니를 이어가기 힘들어서요."


엄마는 어렵사리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학교에 찾아가 사정이야기를 하셨고, 학교에 다녀오신 어머니의 손에는 기다란 타원형의 옥수수 빵 한 보따리가 들려 있었습니다.


선생님도 우시고 엄마도 우셨습니다.
아이들을 맡기고 찾아보기는커녕, 식량을 구걸하러 갔다 오신 엄마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엄마의 용기 있는 구걸로 우리 가족은 며칠 동안 성한 빵을 실컷 먹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빵은 곰팡이가 나면 씻어서 먹고, 말렸다 물에 풀어서 먹었습니다.


서지울댁 아저씨가 노환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얘들 데려오너라."
 
아버지가 그 댁으로 날품팔이 가면 우리 사 남매, 모두를 데려와 밥 먹이라 하시던 구세주 노인이 돌아가셨던 것입니다.


장례를 치르고 흙이 마르지 않은 산소 옆에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동부가루가 성글성글 박힌 제사 시루떡과 옥춘, 밀가루를 구어 조청에 바른 과줄을 나누어 줍니다.


아이들은 하나라도 먼저 얻어먹고 더 얻어먹으려고 두 번씩 줄을 서고 법석입니다.


나도 줄을 서서 떡 봉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얻은 제사 시루떡 한 조각을 먹으려니 더럭 눈물이 납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한사람의 주검 앞에서 흘린 진심의 눈물입니다.


"누가 이제 따듯한 쌀밥 한 그릇을 우리 형제들에게 줄까?"


나는 어린 마음에 혼자 뇌이며 고마움과 서운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느 토요일 오후에 상채네 집에 놀러갔습니다.


방으로 들어가니 부대서 버린 베니어판을 잘라 못을 박아 만든 타원형의 노란 뼁끼칠을 한 밥상 위에 잘 닦지 않아 누렇다 못해 시퍼런 기운이 감도는 놋주발에 누런 호박 푸랭이가 차려져 있었습니다.


감자 껍데기를 많이 벗겨 반쯤 닳은 누런 놋수저로 마구 퍼먹으며 얼굴에 튄 호박 푸랭이를 서로 뭉개며 낄낄거렸습니다.


그해 춘궁기에 철중이네는 무밥만 먹고, 해창이네는 쑥만 먹으며 살았답니다.


쉰 밥, 쉰 감자를 물에 씻어 잡수시던 어머니….


그러면서도 바가지를 들고 동냥하는 거지가 오면 당신 먹을 것을 내주시고 굶으시던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4년 10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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