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새 학기에는 농협에서 대출을 받아 아들을 강원도 상지대학에서 대진대학 행정학과 2년에 편입을 시켰습니다. 야간대학교 편입 후 아들은 대진대학 구내식당에서 아르바이트 허드렛일을 하면서 시간당 3천 원씩 받으며, 대학교에서 낮에는 아르바이트, 밤에는 수업을 받았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 수업이 없는 날에는 송우리 인력시장에 나가서 일을 하며 학비를 보탰습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장애인을 등한시 하는 풍토입니다. 아카시아 꽃이 시들어 가는 늦은 봄 무거운 몸으로 억지로 손님 몇의 머리를 이발하니 피곤한 듯 잠깐 잠이 들어 있는데, “정호야 정호야”하면서 잠을 깨우기에 눈을 떠 보니 나이가 들어 보이는 장애인이 목달이를 짚고 찾아와서 “이현재 씨”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하니 명함을 건네주어 받아보니 포천지체장애자협회에 김영환 회장님께서 저의 업소를 방문한 것입니다.
저는 장애자협회도 모르고 협회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회장님께서는 저를 잘 안다고 말씀을 하며 많은 봉사활동을 하신다는 소식을 접했다고 하시면서 사무실을 한 번 방문해달라고 하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며칠 후에 후배 박은배와 같이 신북면에 위치한 장애인재활작업장을 방문하니 회장님께서는 저를 반갑게 맞으시면서 장애인들의 생활상 애로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에게 장애자협회 고문을 맡아 같이 일을 하자고 권유 하는데, 저는 부족하여 저 같은 사람이 무슨 고문을 맡느냐고 사양을 하니, 계속된 권유에 못 이겨 허락을 했습니다.
며칠 후에 다시 후배의 승용차편으로 재활작업장을 방문할 때 가진 돈이 없어, 하루에 천원, 2천 원씩 따로 챙겨두었던 돈으로 요구르트와 빵 등을 사가지고 장애인협회 사무실에 도착해 보니 지팡이 1개를 사용하는 분, 지팡이 2개를 사용하는 분, 휠체어만 사용하는 분 등 비록 몸은 장애지만 얼굴들은 모두 밝아 보였습니다. 저를 보고는 다들 반가워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저는 지팡이 하나를 짚고 다니면서 작업을 하는 여장애인의 등허리를 두드리며 “당신은 큰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분이니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을 가지라”고 말하니 저의 얼굴을 쳐다보시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