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隋:581∼619)나라 말의 혼란기에 이세민(李世民)은 아버지인 이연(李淵)과 함께 군사를 일으켜 관중(關中)을 장악했다. 이듬해(618) 2세 양제(煬帝)가 암살되자 이세민은 양제의 손자인 3세 공제(恭帝)를 폐하고 당(唐:618∼907) 나라를 '창업'했다.
唐(당)나라를 세운 것은 高祖(고조) 이연이었지만 건국의 기초를 잘 다져 반석 위에 나라를 올려놓은 것은 이연의 둘째 아들 이세민이었다.太宗(태종) 이세민은 사치를 경계하고 어진 신하를 중용하여 나라를 잘 다스려 후세 군왕이 治世(치세)의 본보기로 삼은 盛世(성세)를 이룩했다. 이를 '貞觀(정관)의 治(치)'라고 일컫는다.
'정관의 치'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두여회, 방현령, 위징 같은 훌륭한 신하들이 태종을 잘 보필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태종이 가까운 신하들에게 창업(나라를 세우는 일)과 수성(세운 나라를 지켜나가는 일)중 어느 쪽이 어렵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태종과 함께 건국초창기에 고생했던 방현령은 창업이 더 어렵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위징은 일단 천하를 손에 넣어버리면 마음이 교만해져서 정사를 보는 것도 게을러지게 되어 수성이 더 어렵다고 대답했다. 태종은 이 상반된 대답이 두 사람답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 창업은 옛날이야기가 되고 말았소. 앞으로는 수성의 어려움을 諸公(제공)과 함께 헤쳐 나가도록 할까 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