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수영발전을 위해 연습에 한창인 심유명코치와 제자들 (심코치, 심완, 구슬, 구한영선수, 김민정코치)
"평생을 후학양성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포천시수영연맹 부회장이자 대진대학교 교수, 포천초등학교 수영부코치로 재직중인 심유명(59)코치에겐 항상 ‘도전’이란 수식어가 따른다.
레슬링으로 학창시절을 보냈던 심유명(59)코치가 수영을 접하게 된 건 1967년 경희대학교 체육학과 졸업 후 해성여고(서울 전농동)에서 10여년간 체육교사로 재직하던 중 어린이 수영을 지도하면서 부터다.
하지만 심 코치에게는 신학문에 대한 욕구가 있었다.
“나이 30이 넘어서 1981년 경희대학교 체육대학원에 입학했죠”라며 “대학원을 마치고 캐나다에에 국제스포츠비교학을 연수하던 중 그리스 올림픽아카데미에서 연수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며 당시를 회상한다.
“그리스에서 당시 대한체육회회장으로 있던 고 정주영씨를 만났다”는 그는 “한국에는 수중발레 종목만 없다”는 고 정주영 회장의 말을 듣고 수중발레 지도자 연수를 받은 것이 오늘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1983) 처음으로 수중발레를 국내에 소개했을 때 대한체육회 등 관계자들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심 코치는 “해성여중 1학년 학생을 선발해 책이나 비디오 등으로 수중발레 훈련을 시켰다”며 “생소한 종목이다 보니 지원자가 많았죠. 하지만 운동을 늦게 시작한 학생들의 진로문제 등이 눈앞에 걱정이었다.
생각해낸 묘안이 63빌딩 수족관에서 먹이를 주는 일을 시켰다며 당시 수중발레가 처한 현실이 암울했음을 단적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88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수영연맹이 수중발레에 대한 관심 갖고 심 코치가 훈련시키던 선수들을 뽑아 대회에 출전하게 된 것이다. 물론 심 코치는 한국 최초의 수중발레코치였던 것이다.
포천시와는 1994년 일동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을 선발해 수중발레를 교육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는 심 코치는 “처음에는 초등학교 학생 3명으로 시작했고 15명까지 가르친 적도 있었다”며 “경제적인 이유로 좋은 선수들을 많이 놓친 것이 아쉬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양성한 선수들이 2001년부터는 우승을 차지하는 등 오랜 역경 속에서 차츰 결실을 맺었다.
심 코치는 항상 포천시 체육관계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체육회는 교육청과 연계해 뚜렷한 목표의식을 갖고 엘리트 선수의 발굴, 육성에 힘써달라”는 것이다. 또 “생활체육협의회는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한 목표로 설립된 만큼 종목을 개편해 효율적인 지원을 해 달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일단 관내 학교체육 종목 중 각종대회에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종목들을 먼저 양성하는 준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심 코치에게 무엇보다도 시급한 문제 당면해 있다.
바로 선수 수급문제다. 현재 일동초등학교에서 수중발레를 배우는 학생이 1명뿐이기 때문이다.
“송우리 지역에서 선수를 발굴하기 위해 여러 면에서 노력하고 있다”며 “학교측과의 협의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심 코치는 “우선 선수수급 문제를 해결한 후 지도자들을 초청해 연수계획 등 많은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한다.
포천에 심 코치의 제자들은 초.중.고.대학교까지 분포돼 있다. 수중발레 선수로는 대진대학교에 유나나(1년, 국가대표), 일동종고에 유미나(2년), 추봉증(1년), 일동중에 구한영(3년), 구 슬(1년), 일동초 윤재연(4년)선수가 그의 제자들이다. 또 포천 유일의 경형선수로 일동중 심 완(2년)선수가 있다.
심 코치는 포천에 수영종목을 정착시키기 위해 오늘도 동분서주하며 선수발굴 및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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