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시보(placebo) 효과'란 말은 많이 들어봤어도 ‘노시보(nocebo) 효과’란 말은 별로 들어본 일이 없을 것이다. 플라시보 효과는 긍정(肯定)하는 마음에서 오는 것이고 노시보 효과는 부정(否定)하는 마음에서 오는 것이다. “이 약 드시면 두통도 줄고 상태도 호전될 겁니다” 의사가 건네는 하얀 가루약은 실제로는 밀가루였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얼마 후 다시 병원을 찾은 환자는 상태가 호전됐다며 고맙다는 말을 연발한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플라시보 효과’다. 약이 필요 없는데도 환자가 기어이 약을 복용하고 싶어한다면 심리적 안정을 위해 밀가루를 줄 수도 있다. ‘좋은 약을 먹었으니 잘 되겠지’라는 긍정의 힘이 작동하면 예상치 않게 좋은 효과가 나올 수 있다. ‘긍정의 효과’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의사가 좋은 처방전을 주는데 그 의사를 싫어하는 간호사나 동료 의사가 귓속말로 “그 처방전 엉터리입니다”라고 속삭인다면 어떨까. 물론 환자가 무시하면 그만이지만 왠지 꺼림칙한 상황에서 약을 복용한다면 고통은 더 심해질 수도 있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노시보 효과’다. 노시보 효과는 ‘부정의 힘’을 보여준다. ‘이 처방전이 엉터리 아닐까’라는 의심과 함께 부정적 정서(情緖)를 가지고 약을 복용하면 스트레스성 호르몬이 분비되면서 약효는 반감될 뿐 아니라 아예 효과가 없어질 수도 있다. ‘부정의 효과’다.
그러고 보면 지금 우리 사회는 ‘부정의 힘’과 ‘분노의 힘’ 그리고 이와 연결된 ‘노시보 효과’가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부가 하는 일은 모두 우습고 ‘가카’의 말은 모두 거짓이다. 46인의 용사가 희생(犧牲)을 당한 천안함 폭침사태는 자작극 수준으로 매도(罵倒)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나라를 망치는 음모(陰謀)라는 비방이 나돈다. 무슨 얘기를 해도 음모론이 휘감고 다닌다. 이러다 보니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의견은 무시되거나 질타(叱咤)당하고 비판과 음모론이 오히려 정론(正論)으로 취급된다. ‘나꼼수’식의 속삭임은 어느덧 많은 사람의 뇌리(腦裡)를 사로잡고 무슨 말을 하건 무슨 얘기를 하건 불신(不信)하는 정서가 자리를 잡아 버렸다.
물론 당연히 이유가 있다. 글로벌(global) 위기가 덮치고 양극화가 심화되고 물가는 오르고 살림은 팍팍해진 데다가 교육 주거(住居) 노후 의료 문제까지 겹쳤다. 게다가 소위 기성세대 내지 기득권층(旣得權層)에 대한 불신도 심하고 ‘금융위기조차 예언 못한 것들’ 운운하며 주류 경제학도 매도 당하면서 자본주의를 질타하는 목소리까지 높아졌다. 이처럼 병이 깊은데 여기에 ‘노시보 효과’까지 겹쳐지다 보니 무슨 처방전을 내밀어도 효과는 시원치 않다.
부정적인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그리고 분심(忿心)을 다스려야 한다. 남을 미워하고 원망하고 탓하는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모든 인간관계(人間關係)는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내가 있음으로서 상대(相對)가 있는 것이고 내가 있음으로서 나와 상대와의 관계(關係)가 설정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는 쏙 빼놓고 상대만을 탓한다. 따지고 보면 원인제공(原因提供)은 내가 하는 것인데 나는 쏙 빼놓고 생각한다. 그래서는 안 된다. 자신을 되돌아봐야 한다. 자성(自省)해야 한다.
상대방은 호시탐탐(虎視耽耽) 노리고 있는데 자중지란(自中之亂)을 일으켜서야 되겠는가? 한 마음 한 뜻으로 힘을 모아도 부치는 형국이다. 특히 국방과 안보(安保)면에서 그렇다. 국방과 안보를 놓고 여야가 분열(分裂)해서는 안 된다. 안보와 국방을 놓고 분열하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나라를 생각해야 한다. 당리당략(黨利黨略)만 생각하고 사익(私益)만 앞세워서는 안 된다. 자신의 영달(榮達)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노시보 효과에 편승해서는 안 된다.
역사는 말한다. “뭉치면 살고 헤어지면 죽는다” 이 말은 동서고금(東西古今)을 관통하는 진리(眞理)이다. 특히 정치한다는 사람들이 새겨들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