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가지마다 하얀 눈꽃처럼 소복하게 피었던 벚꽃이 어느새 분홍빛으로 변하면서 금방 날아 갈 것만 같은 농염한 봄빛을 뿜어내고 있다. 이맘때 쯤 되면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책가방을 안은 채 피 흘려 쓰러지던 모습이 기억 멀리서 기적소리처럼 눈앞에 다가온다. 50년 전에 일어났던 4.19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무슨 일이 있기에 데모가 일어났느냐고 주위사람들에게 물었다. 진상을 듣고서야 비로소 “불의에 항거 할 줄 모르는 백성은 죽은 백성이야! 국민이 나를 원치 않는다면 물러가야지!”라고 하면서 그는 누구의 권고를 받은 바도 없이 26일 스스로 물러났다. 부상하여 누워 있는 학생들을 찾아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내가 받을 총탄을 너희들이 받았구나!”하는 위로의 말로 스스로를 달랬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우남 이승만 박사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그의 업적에 걸맞는 평가를 받지 못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이유는 여러 갈래다. 역대 정권이 모두 그 전 정권을 폄훼하여 왔다는 점과 <해방 전후사의 인식>과 같은 친북적 역사관이 상당기간 풍미한 데에도 그 이유가 없지 않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건국사업이라는 것이 얼마나 지난(至難)한 것인가를 이해하면서 부터는 서서히 그의 업적이 모습을 나타내는 것 같은 추세가 아닌가 한다. 그렇다고 하여 그의 과(過)가 없어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의 과와 함께 업적도 평가하자는 얘기다.
해방공간에서 공산정권수립을 위해 날뛰는 좌익세력과 이에 맞서 싸우는 우익세력의 정치투쟁만이 제철 만난 듯 활기를 띄고 있었을 무렵, 나라의 앞날은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미 군정(軍政)은 소련이 어떤 음모를 꾸미는지도 모르면서 남한 내에서 좌우합작운동이나 벌리면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이러한 때에 이 박사는 46년 6월3일 정읍에서 남한만이라도 단독정부를 수립할 것을 주장함으로써 대한민국 탄생의 신호탄을 올렸다. 이로부터 그는 48년 8월 15일 정부수립을 전후해 불철주야 건국사업을 위해 헌신하였다. 그는 헌법제정 요강(要綱)도 제시하였고 토지개혁과 의무교육도 시행하였다. 미국이 극동방어선에서 한국을 제외하자 이를 기회로 장갑차 한 대 없는 대한민국을 향해 남침을 기도한 북한군의 6.25남침도 유엔외교를 통해 훌륭하게 방어해 냈다. 또한 휴전과 함께 북한에 송환되면 죽을 수밖에 없는 반공포로 2만 7천명을 유엔군도 모르게 석방시킴으로써 그 생명을 살려내기도 했다.
이러한 건국사업에 대해 혹자는 남북분단을 획책한 장본인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분단의 궁극적 책임은 미·소가 함께 남북한을 분할점령한 데에서부터 그 씨앗이 뿌려지고 소련이 한반도를 자신들의 지배하에 두려고 획책한 데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북진통일과 휴전회담 반대를 주장하다가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그는 휴전의 대가로 한미방위조약을 이끌어 냈다. 이로 하여 6.25당시 10만명에 불과했던 우리 국군은 4년이 지난 54년에는 65만명의 대군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를 두고 혹자는 군사 작전권을 미국에 양도 해버린 주권 상실적(喪失的) 조치에 불과하다고 혹평하는 사람도 있다. 모르긴 하되 이런 시각들은 어쩌면 대한민국은 태어나서는 안 되는 나라쯤으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또 북한은 친일파를 완벽하게 숙청한데 비해서 남한은 오히려 친일파를 두둔한 것에 대한 비난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굳이 변명하자면 해방당시의 문맹률이 86%인 상황에서 친일파의 처단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건국사업에 활용하는 것이 나라에 득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 측면도 없지 않았을 터이다.
또 혹자는 대한민국정부 수립일을 임시정부 수립일로 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해 임시정부는 대한민국의 뿌리다. 그러나 대한민국 그 자체는 아니다. 임시정부라는 뿌리위에 우뚝 솟은 줄기는 대한민국이다. 뿌리가 튼튼하면 줄기도 잘 자라기 마련! 그런 이치로 뿌리를 튼튼하게 가꾸는 일에 충실한 보람을 강건(强健)하게 자라는 줄기에서 찾는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암살로 돌아간 고하(古下) 송진우를 위해 우남이 시(詩)로 썼다는 곡(哭)이 왠지 소개하고 싶어진다.
“의인은 예부터 자기 명에 죽는 경우가 드물고/ 한번 죽는 것을 대수롭게 여겨 마치 제집으로 돌아가듯 한다./나라 안이 모두 슬퍼하고 처자들도 우는데/ 섣달그믐 망우리에는 눈만 부슬 부슬 뿌리는가!”(이호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