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대상이라도 관찰하고 상상력을 발휘하면 새로움을 발견하게 된다. 때로는 우연성이 삶의 리듬을 바꿔주기도 한다. 특히, 이것은 문인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우연성은 착상을 낳고 착상은 글감을 제공한다.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찾아온 이것이 과연 훌륭한 글감이 될 수 있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일이다. 그런데 하나 더 흥미로운 것은 이 판단조차도 의식적인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이라는 데 있다. 그래서 작가에겐 직관이라는 게 정말 중요하다. 이것은 힘든 글쓰기의 새로운 원초가 되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나에게도 이상한 버릇이 생겨났다. 나와 마주치는 어떠한 대상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생각하고 관찰하고 상상하는 버릇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 같은 변화가 신기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나를 귀찮게 하기도 하고 옹졸한 사람으로 만들기도 한다. 어제는 ‘관음죽' 분갈이로 땀을 흠뻑 흘렸다. 94년도 회사 개업식 때 제주도 귤 친구가 선물한 것인데 올해로 12년째다. 이것은 나에게는 소중한 인연이었다. 근처에 있는 화원에 들러 꽤 큰 화분 한 개와 약간의 비료를 샀다. 그리고 분갈이작업을 시작했다. 오랜 세월 동안 자라난 관음죽은 화분에서 쉽게 뽑아낼 수 없을 정도로 뿌리가 깊게 박혀있다. 낑낑대면서 화분에 충격을 가하고 사방으로 흔들어대면서 겨우 뽑아 올렸다.
뽑힌 관음죽 뿌리는 칡넝쿨처럼 서로 엉키고 설켜 단단하게 뭉쳐 있었다. 좁은 공간에서 꼼짝없이 갇혀 있었으니 뿌리는 흙을 모조리 감싸 안고 생명을 부지했나 보다. 전지가위로 뿌리를 자르고 흙을 털어내면서 새 화분에다 정성껏 옮겨 심었다. 손바닥에 까맣게 묻은 흙을 씻어내면서 거울에 비친 내 손을 보았다. 손바닥의 핏줄, 손등과 손톱의 리듬 그리고 손마디에 생긴 물집이 보였다. 이렇게 볼 수 있고 움직일 수 있는 손을 가졌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다행스러운 일인가, 나에게 감사하다. 신체에 붙어 있는 어느 것 하나라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겠지만, 손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손은 발, 몸통과 함께 신체부위의 핵심구성요소이기 때문이다.
우선, 손은 여러 가지 일을 하는 도구이다. 또한, 말을 한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상태를 표현하고 심성이나 건강 상태를 나타내기도 한다. 손이 상징하는 의미는 다양하다. 전능함과 섭리, 축복과 자비, 관용과 보호는 신의 손으로 칭하며, 다섯 손가락, 숫자 5는 소우주인 인간을 가리키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손의 상징은 전신(오장육부五臟六腑)을 말하기도 한다. 그 외, 손은 힘, 권력, 강함, 소유, 정화 그리고 음양(陰陽)을 뜻한다. 이런 다양한 상징을 무의식으로 사용하는 인간의 행위에서 다양한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즉, 손을 겹쳐 잡음으로써 안식(安息)이나 부동(不動)을, 두 손을 가슴에 얹음으로써 복종을 표시하고, 손으로 눈을 가림으로써 부끄러움이나 공포를 표출한다. 그 외, 주먹을 쥠은 위협, 공격, 분노를 나타내고 손을 자연스럽게 폄은 은혜로움, 곤경에서 풀려남, 그리고 정의를 나타낸다. 두 손을 뒤집어 보임으로써 무방비 상태로 공격할 의사가 없음을 나타낸다. 두 손을 위로 올림으로써 숭배나 예배 그리고 무지함을 암시하기도 한다.
그래서 손은 문인에게는 문학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손을 통해 인간을 탐구하고 자신을 발견하고 자연과의 인간관계를 연구하고 노래하는 것이다. 당신은 어떤 손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어떤 손을 가지고 있는가, 혹시 ‘박남수’ 시인의 손처럼 허무에서 인생의 본질을 찾는, 허무한 손을 찾고 있지는 않은지…. 세월에 저린 어머니의 위대한 갈퀴손 또한 어떤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이 아닐까,
‘손이/이윽고 확신한 것은/역시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뿐이다. 살아가면서 인간으로서 더러운 손이 아니기를 염원해본다. 그리고 해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포항 ‘호미곶'의 ‘상생의 손', 노동으로 굳어진 친구의 손을 그린 ‘뒤러'의 ‘기도하는 손', 이런 손들도 좋겠다. 이런 손이 아닐지언정 자신에게도 이웃에게도 약간의 쓸모가 있고 부끄럽지 않은 그런 손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