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진이와 미진이는 사촌 동생으로 희진이가 1년 위인 연년생입니다. 명석이는 희진이 보다 3년 선배였지요. 그의 별명은 이름과 작은 키에서 따온 것으로 멍석딸기입니다. 멍석딸기는 넝쿨에 가시가 있는 딸기로서 시큼하지만 아이들이 곧잘 따먹는 딸기랍니다. 하루는 유리구슬로 댕구치기를 하며 놀다 명석이가 희진이 동생 미진이를 때리는 바람에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싸움은 순식간에 두 형제와 우리 두 형제 대 명석이 혼자의 4대1의 싸움으로 번졌습니다. "야, 선배면 다야. 죽여 버려!" 우리는 사촌과 형제의 우애를 과시하듯 보기 좋게 그를 울리고 말았습니다. 우리 사촌지간은 늘 함께 놀면서 그렇게 우애 좋게 자랐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밥 때가 되면 우리는 서로의 집을 나와야만 했습니다. "얘, 희진아! 어디 가니? 밥 먹구 가라!"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밥 먹구 왔어요." 그러면서 배가 고픈 희진이와 미진이는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갑니다. 자기들이 밥을 먹으면 작은 엄마가 잡수실 밥이 없기 때문이지요. 어머니는 애써 옷자락을 잡으며 "얘, 밥 많이 했어? 니덜 주려구…." 엄마는 그러면서 사촌들을 방으로 밀어 넣으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끼니 때우기 어려운 사촌들을 먹이시려는 작은엄마의 사랑입니다. 조카들에게 점심을 먹인 엄마는 가마솥에 물을 부어 누룽지 몇 알을 끓여 마시는 것으로 긴 긴 겨울 점심 끼니를 대신해야 합니다. 우리가 큰댁에 놀러갔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끔찍이도 나를 사랑하시던 큰엄마는 늘 나와 동생들 이름을 부르며 "밥 먹구 가라. 두부해 줄까?, 너 묵 좋아하지? 옛다 청푸묵이다." 하셨지만 우리들은 그 때마다 내가 먹으면 큰엄마가 굶으셔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밥 때만 되면 재미있게 놀던 사촌지간의 정도 휴식시간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에는 꼭 지켜야 하는 불문율입니다. 언제 건, 어느 때이건, 큰집에서나, 작은집에서나 어머니들이 밥상을 차려 들어오시면 달음질 쳐 도망가듯 집으로 와야 합니다. 엄마의 가르침과 큰엄마의 가르침은 언제나 똑같으십니다. "큰집 살림이 어려운데, 밥상 앞에서 얼씬거리면 너희들 때문에 큰엄마나 큰아버지께서 잡수실 끼니 꺼리가 없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유일하게 밥을 얻어먹을 수 있는 곳은 개울 건너에 혼자 살고 계신 할머니 댁입니다. 그렇지만 그것도 무조건 밥을 얻어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들이 할머니께 쌀밥을 얻어먹으려면 그에 준하는 노동이 따릅니다. 할머니께서는 늘 허기진 두 집 손주 새끼들에게 김치를 썰어 넣고 참기름을 한 방울 떨어뜨려, 화롯불 위에 올려 쓱쓱 비빈 비빔밥을 먹이려 하십니다. 그렇지만 엄마도 큰엄마도 그냥 밥을 먹고 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연로하신 할머니를 위한 배려를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할머니는 연로하셔서 물동이를 일 힘도 나무지게를 질 힘도 없으십니다. 그렇기에 할머니 댁에서 20여m 떨어진 곳에 있는 "1968년5월 1일 준공, 국회의원 오치성"이라 쓰인 두레박 우물에 가서 물을 몇 지개 떠다 드린다던지, 땔 나무라도 한 단 해다 드려야 밥을 먹을 자격이 주어집니다. "얘, 밥 많이 먹어라, 할미가 물을 먹어야 얼마나 먹겠니? 물은 조금만 떠오고 밥은 많이 먹거라." 하시거나 "나무하러 멀리 갈 것 없다. 아무데나 가서 그저 풀낭구 한 단만 해 오너라. 밥 실컷 먹구… 배고프면 놀다가 들어와서도 밥 먹으련."라고 늘 챙겨주십니다. 할머니 댁 뒷곁에는 정말로 먹을 것이 많습니다. 왜주나무, 앵두나무, 배나무, 대추나무가 있었고, 바닥에는 딸기가 가득합니다. 아이들에게 그런 할머니집이 있는 우리는 동경의 대상이랍니다. 우리는 딸기 한 개, 앵두 한 알로 허세를 부렸고, 아이들은 우리와 친해지려고 갖은 아양을 다 떱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