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영조 때 효자가 한 분 살았다고 합니다. 효자는 일찍 일어나 아버님 잠자리에 들어 이불 요 밑에 손을 넣어 보고 겨울에는 아침 군불을 때어 새벽녘 방안의 찬 기운을 가시게 하였으며 저녁 잠자리를 보살펴드림은 물론 이불 속에 먼저 누워 이불 속을 따스히 덥힌 다음 아버님을 잠자리에 드시게 하였다. 잠자리 머리맡에 자리끼로 물을 담아다 놓음은 물론 겨울에는 군밤 여름에는 화채를 대령하는 효자였다. 밤늦게까지 옛 이야기 책을 읽어드리기도 하고 일가 친척들의 안부를 수소문하여 조석(朝夕) 문안 때 고해드림도 잊지 않았다.
봄, 가을 춘추 시회(詩會)를 열어 인근 선비들을 모아 아버님을 즐겁게 해 드림은 물론 아버님의 죽마고우(竹馬故友)들을 모셔다가 생신 연회를 열기도 하였으며 특히 냇가 발담그기(덕족놀이)는 거르지 않고 행하여 이웃 마을까지도 소문이 자자하였다. 생선반찬을 드실 때 생선가시를 발려 대접함은 물론 과일 씨를 발려 대접하는 정성을 다하였으며 집 뒤울안 샘물을 끌어다가 마당 전 연못을 만들고 연꽃을 기르는 한편 온갖 물고기를 기르며 아버님이 낚시로 소일하시게 하였으니 하늘의 해도 효자의 효행을 보고자 하늘 길에서 멈췄다 가고 밤 하늘의 달빛도 효자네 집 뜰만 비친다고 할 만치 효자의 효행은 고을 안의 자랑이며 거울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영조임금께서는 효자를 만나 보고자 하셨다. 이에 포천현감은 효자를 대동하고 영조임금 어전에 엎드려 알현하였다.
"네가 바로 그 유명한 포천의 효자란 말이냐?" "예, 그렇사옵니다." "그럼 자친(어머님)께서는?" "십년 전, 작고하셨습니다." "아! 그래? 이 고얀놈 네 어찌 효자라 할 수 있겠느냐? 너는 부부가 효자 소리 들어가며 알콩 달콩 잘도 살았으면서 네 아버지는 10년 간이나 독수공방에서 얼마나 외로움을 달래며 눈물 지으셨겠느냐? 효자상은 커녕 볼기 열대를 때려 보내거라… "
영조 임금님의 노하심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 후, 효자는 귀향하는 즉시 밤이면 배를 따스히 해드리고 다리도 주물러드리며 말동무도 해 드리는 착한 계모님을 새로 모시는 효도를 다시 하였다고 합니다.
그 효자가 어는 댁 누구이며 누구의 자손인지는 알 수 없으나 팔십이 넘은 아버지도 홀로 사시는 외로운 여생을 보내기 않도록 계모(繼母:동첩(童妾):웃방마님)님이나 효모(孝母)님을 모시는 댁이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