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하고 5개월이 지난 아가는 그림책에 있는 과일을 열심히 집어서 나의 입에 넣어주는 시늉을 하고 진짜로 먹을 수 있는 바나나는 ‘아~’ 하고 입을 벌려 달라고 해도 연신 자기 입으로만 들어간다.
주기 싫어도 줘야하고 주고 싶어도 주지 못하는 어른이 되어버린 난 어린 아이의 솔직함에 당황스럽기 조차하다.
체면 때문에 혹은 예의상, 거래관계의 계산과 기대 등의 이유로 나의 생각과 감정은 잠재의식 속에 재워두고, 주고 받음에 손익을 따진다. 일방적인 것과 당연한 것과 무조건은 없다고 받기만 하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있는 자를 비난하기도 한다. 말로는 “받는 사람보다 줄수 있는 사람이 복이다”라고 하면서 이내 속물은 머리를 굴린다.
아직은 앙상하고 푸석하게 마른 나뭇가지에 연둣빛 반짝이는 잎이 돋아나기엔 이른 계절이다. 남이섬을 따라 흐르는 강바람은 옷깃 속으로 스며들고 이른 봄바람난 여인의 머리를 풀어헤친다.
그러나 자연은 변함없이 무엇이든 주기위해 얼어붙은 강물을 녹이고 지구와 태양의 거리를 좁힌다. 우울한 마음엔 온정과 누워있는 자에게는 무료함으로 움직이고자 하는 열정을…. 그리고 사랑할 수 있는 열병과 그리워할 고통과 기다릴 수 있는 인내를 끊임없이 가동시킨다.
대상과 양을 정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무조건 당연하게 그러나 부담스럽지 않게, 때로는 조심스럽게 자연은 자신의 모든 것을 동원하여 주려한다.
겨울과 봄의 중간쯤인 3월은 마른 나뭇가지와 마른 풀잎과 맑지도 흐리지도 않은 회색빛 하늘로 사계절 중 가장 까실하다. 그러나 얼었던 대지를 녹이는 불길과 잠들어 있던 산천초목을 깨우는 호령은 지금이 최고조에 달(達)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