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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출 에세이=30] 초심을 생각하다


김형출 기자 / mjmc00@hanmail.net입력 : 2012년 03월 06일
 
↑↑ 김형출 시인, 수필가
ⓒ (주)포천신문사 
그 손목시계는 새것이고 우리나라 시계였다. 문자판에는 날짜와 요일이 표기되어 있고 방수, 방충이 되는 시계였다. 시계는 예비신부 측으로부터 받아 놓은 형의 예물 시계다. 형은 늦은 나이에 육군에 입대하여 강원도 최전방 포병부대에서 군 복무 중이었다. 물론, 결혼 날짜에 맞춰 휴가를 나올 예정이고 시계는 결혼식 날 형의 왼쪽 손목에서 폼이 날것이다.

나는 가족들 몰래 아래채에 들러 서랍 속에 있던 형의 예물 시계를 조심스럽게 꺼내 살짝 훔쳐보고는 얼른 제자리에 넣곤 했다. 너무나 신기했기 때문이다. 나도 언제쯤 형 같은 번듯한 손목시계 하나 차고 다닐 수 있을까, 상상만 해도 꿈같았다.

초등학교 매 학년 신학기가 되면 가정 신상기록부를 작성하게 되어 있었는데 선생님의 가정방문 때 참고할 사항이기도 하다. 거기에 기록해야 할 것이 가족 외에 논밭이 몇 마지기인지 소 돼지 등 가축이 몇 마리인지, 시계, 라디오가 있는지를 묻는 항목이 있었다. 그 시절 농촌에서는 시계나 라디오만 있어도 부잣집 소리를 들었으니, 어린 마음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었다.

60년대 초 특히, 우리 농촌은 가난하기 짝이 없었다. 양지마을에 낡은 라디오나 낡은 시계가 있었던 집은 한 집도 없었으니, 요즈음 세대들에게는 거짓말 같은 이야기로 들릴 수밖에요…. 지금은 흔한 것이 시계이다. 심지어 공공건물 벽면에도 시계가 부착되어있고 휴대전화기, 자동차, 인터넷, 컴퓨터 등 시계가 널려 있다.

이젠 시계는 단순 시각을 알려주는 기계가 아니라 우리 몸을 치장하고 공간을 장식해주는 장식품이 되어버렸다. 시계 기술의 발달이 급변하는 현대사회의 깊게 골 파인 갈등, 반목 같아서 혼란스럽기까지 한다.

개구쟁이 눈에는 이렇게 시계가 매우 흔한 세상이 오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옛날 수동시계는 태엽만 감아 두면 시계는 밥이 떨어질 때까지 열심히 움직인다. 나는 이런 투박한 시계를 원했다. 나의 작은 꿈은 그로부터 9년쯤 후에 이루어졌다. 1975년, 생도 1학년 때 외박을 명받고 고향이 아닌 형님이 살고 계시던 서울로 상경했다.

낯선 서울거리는 너무나 화려하고 생기가 넘쳐있었다. 몇 번 묻고 물어 형님 집을 어렵사리 찾을 수 있었다. 단칸방에 살고 계시던 형님은 발령받는지가 몇 달밖에 안된 수원지 말단 공무원이다. 박봉에 빠듯한 살림살이에도 내가 그렇게 갖고 싶어 했던 깔끔한 손목시계를 형수님이 사주셨다.

“형수님, 형님, 고맙습니다.” 나의 얼굴은 금방 싱글벙글 신이 났다.
“형수님! 이 시계 비싼 시계 아니에요?” “도련님, 그리 비싼 시계 아닌데요.”

다음날 귀대하는 발걸음도 가벼웠다. 수없이 손목시계를 쳐다보면서 째깍째깍 움직이는 시곗바늘 따라 내 마음도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시곗바늘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 돌고 돌아 제자리에 되돌아왔을 때는 세월 참 많이 흘렀다. 며칠 전, 장식장 안에서 여러 종류의 손목시계를 끄집어내어 하나하나 만져 보았다.

종로 시계 점포에서 사들인 낡은 수동식 금장시계, 일본 거래처에서 선물 받은 티타늄시계, 미국 거래처에서 선물 받은 스위스제 스포츠 시계, 팀스피릿 훈련 때 미군에게 받은 군용시계, 결혼예물시계 등, 몇 개는 건전지가 떨어져 시곗바늘이 멈춰서 있고, 시곗줄이 없는 것도 있다. 언젠가 아내는 나에게 “당신, 혹시 소련군 아니에요?”라며 못마땅한 듯 가자미눈을 흘긴 적이 있다. 손목시계에 관심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소련군이라니, 6·25동란 때 소련군 이야기인가 보다.

하루라는 이름은 시간에 관한 한 소상히 꿰뚫고 있어 위계질서가 꼭 필요한 건 아니다. 아버지는 하루를 걷는데 반나절이나 걸리지 않습니다. 나는 하루를 걷는 데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아요. 아들은 하루를 걷는 데 육십 초나 걸리지 않아. 아버지의 베틀다리는 설핏설핏 +/- 인생 허용오차이고요. 나의 징검다리는 총총걸음 +/- 인생 허용오차입니다. 아들의 게움 다리는 그냥 바쁠 뿐, 인생허용 공차를 적용하기란 아직 일러요.

묘·숙(妙·淑)! 아침에 눈뜨면 하루를 사고파는 단단하고 가벼운 24시, 사람에게 전하는 말은 째깍째깍·째깍째깍, 좌·우 벽을 돌아보지 않고 수평으로만 마구 돌고 있다는 것, 눈 달린 숫자만 보면 하루의 위계질서를 알아요. 시곗바늘은 생사를 가늠하는 올가미 같은 과거·현재·미래를 나누어주는 젓가락 같은 서비스입니다. 시계불알만 쳐다보면 길섶을 정점으로 이데올로기가 나타나 험상궂은 얼굴이 보인다.

따발총이 보이고 M1소총이 보인다. K-마르크스도 T.홉스도 보인다. 망가진 소련제 T-6 탱크가 죽어있고 미제 바주카포는 살아있다 시계불알만 보면 시곗바늘소리가 째깍째깍 들려온다. 시계불알은 네 편 내 편을 가르지 않고 좌·우를 오가며 분배와 성장을 공평하게 보듬는다. 시계불알은 좌·우가 모두 하나같다. 하지만, 시계불알만 보면 화가 난다.

[좌·우 경계] 詩 전문-

시계는 문자판에 12개의 징검다리가 놓여있고 시침과 분침 그리고 초침은 누워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일정하게 돌고 있다. 때로는 멈춰있기도 하고 빠르거나 느리게 돌기도 한다. 시계도 사람처럼 망가지기도 하고 병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시계는 궁극적으로 시간적 공간을 제공하고 질서를 알려주기까지 한다. 시계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엉뚱하게도 나는 '이데올로기' 같은 낡은 생각을 하게 된다.

요즈음 텔레비전을 켜고 신문을 펼치면 온통 국회의원 선거이야기다. 그 시계 안에 현재 진행 중인 총선과 대선에서 우리가 하나 되고 세계적인 경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정치꾼이 아닌 정치인이 당선되면 좋겠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한반도는 늘 불안하다. 나는 시계를 보면서 생각한다. 시계의 초심은 평온하다. 좌와 우는 시계 안에 있는 것, 좌우 힘의 균형이 무너지면 초심이 혼돈에 빠져 혼란스러울 것이다.

김형출 / 시인, 수필가
김형출 기자 / mjmc00@hanmail.net입력 : 2012년 03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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