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어처구니 없습니다! 동두천시민들께서는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그 분의 독립운동 사실을 꼭 밝히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요산 역에 광장에 그렇게 광고를 하실 수 없지요! 그 분의 집안과 일가붙이들은 일본놈들에게 멸문지화를 당하였는데도 국가에서는 인정은 고사하고 그 분의 명예마져 회복시키려 하지 않는데 왜? 광고를 하면서 동두천시 자랑을 하십니까? 이희빈 기자 / hblee9362@kornet.net입력 : 2012년 03월 04일
홍덕문은 한말의 애국지사. 휘는 병준(秉俊)이며, 본관은 남양이다. 1919년 3·1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음력 2월 25일(동두천 장날) 정오에 1천여 명의 군중을 이끌고 선두에 서서 만세시위를 전개했다. 그 후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어 갖은 고문을 당했으나 조금도 굴하지 않고 조선의 독립을 주장했다. 출옥한 후에는 일본 헌병이 가한 형독으로 인하여 수년 후 향리인 걸산동에서 세상을 떠났다. 1975년에 시민의 성금을 모아 소요산 입구에 추모비를 세웠다. 화강암으로 된 비신의 앞면에는 애국지사 홍덕문 추모비라고 음각했고, 뒷면에는 선생의 행적을 새겼다.
2012. 2. 19. 일요일 홍덕문선생님의 추모비가 세워진 소요산 입구의 소요산역 등산지도
동두천시의 공식적인 홍보지도에 Hongdukmoon Memorial 홍덕문선생추모비 라고 분명히 기재되어 있다.
동두천시는 홈페이지에 홍덕문 선생의 업적을 게재해 놓고 있으며, 추모비각은 1986년 4월 28일 동두천시문화재로 지정됐다. 동두천시가 1999년 펴낸 ‘동두천시 역사와 문화유적’을 보면 ‘1919년 3·1운동 때 홍덕문 선생 등이 1000여 군중을 인솔하여 동두천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