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말이면 일찍 심은 하지감자가 달걀만큼씩 밑이 들어옵니다.
좀 이르면 오월 말에 모내기를 하고, 보통 유월 초나 아주 늦은 모는 "마냥모"라 하여 칠월 초에도 심는데, 이런 마냥 모를 심는 집은 천수답이어서 비가 와야 모른 내는 집이고, 유월 중순이 넘어가면 보통 모내기가 끝나지요.
금년은 유난히 음력 절기가 이른지라 오월 하순인데도 뒷둔지 번뎅이 모내기로 벌써 반이 넘게 물들어갑니다.
“얘, 채마밭에 가서 호미로 감자 밑둥을 살살 파서 감자 한 양푼만 캐 오련?” 모내기 참 준비에 바쁜 엄마는 내게 하지감자 캐 오라는 심부름을 시키십니다.
땅을 잘 긁도록 생긴 벽채호미로 뿌리를 살살 긁어 큰 감자만 우선 골라 캐었습니다.
“엄마! 감자 캐왔어요!” 싸리로 만든 삼태기에 반쯤 캐 들고 엄마 앞에 와 자랑을 하였습니다.
“야, 우리 아들 다 자랐네. 어서 그 감자 좀 씻어라, 밥 늦어 야단이다.”
엄마는 칭찬으로 나를 돋우면서 슬그머니 일을 더 시키십니다.
나는 짚 낟가리로 가서 볏짚 한 웅큼을 빼다가 감자 껍질을 쓱쓱 문지릅니다.
그리고 물에 헹구니 감자가 어느새 하얗게 껍질이 벗겨집니다.
“어이구, 우리 아들! 기특도 해라!” 엄마는 어깨를 두드리시며 칭찬해 주십니다.
감자는 춘궁기를 이겨낼 구황작물이랍니다.
구황작물이란 배고픔을 이길 작물이란 뜻입니다. 엄마는 감자 요리를 잘 하십니다.
감자를 얇게 썰어 밀가루와 함께 쪄 먹는 감자점떡, 감자가 보리쌀보다 많은 감자를 둔 감자밥, 감자를 삶아 으깨어 설탕이나 소금을 넣어 경단을 만들어 먹던 감자경단, 그리고 지난해, 호미에 긁혀 상처 난 감자와 새끼 감자를 물에 담가 썩혀서 녹말가루로 만든 감자떡, 그리고 녹말가루로 부침개를 부친 감자부꾸미…
특히 쪼잔한 감자들만 골라 간장에 조린 감자조림은 늘 허기진 우리들의 입맛을 돋우어 주십니다.
강원도와 인접한 우리 동네는 유난히도 감자를 많이 심었습니다.
그래서 강원도를 감자바위라 하나 봅니다.
엄마가 해 주시는 음식 중에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감자점떡입니다.
감자점떡은 엄마만의 기술이십니다.
“얘, 가서 막걸리 한 되만 사오너라.” “뭐 하게요, 엄마?” “니덜 감자점떡 해주려구 그런다.” “야호, 신난다.”
나는 휘파람을 불며 주전자를 들고 막걸리를 사러 지점 집으로 향합니다.
막걸리는 언제 먹어도 맛있습니다.
막걸리 심부름을 할 때면 언제나 주전자 주둥이를 입에 대고 몇 모금씩 마시고 옵니다.
엄마는 막걸리 주전자 뚜껑을 열어보십니다.
“ 너 몇 모금 마셨어?” “ 안 먹었어요. 엄마…” “임마, 다 알아, 입 대구 마신 거… ” 내가 머리를 긁적이니 엄마는 모른 척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돌아서십니다.
막걸리는 아버지껜 근사한 음료수요, 허리 아프지 않게 하는 약이고 우리들에겐 빵을 만들어주는 신기한 약품이기도 합니다.
아버지께서 두어 사발 따라 마시고 남은 막걸리를 밀가루와 반죽하여 아랫목에 놓고 이불을 덮으니 금방 부풀어 오릅니다.
“우와, 엄마 밀가루가 두 배는 더 부풀었어요.” 엄마는 부푼 반죽을 가지고 부엌으로 나오셨습니다.
무쇠솥에 들기름을 두르고 감자를 넓찍넓찍하게 썰어 깔으시더니 그 위에 발효된 밀가루 반죽을 넣어 고루 펴십니다.
“얘, 불을 너무 싸게 때면 타니까 조금씩 때거라.” 배에서는 회 곯는 소리가 ‘쭈루룩쭈루륵’ 들립니다.
솥뚜껑을 밀고 나오는 김에 풍겨나오는 냄새가 더욱 배고프게 합니다.
“엄마, 다 되었나 봐요.
얼렁 꺼네세요.
불 그만 땔까요?” 우리 형제들은 배가 고파 야단법석입니다.
우리들의 성화에 못이긴 척 화덕 아궁이에 불을 긁어 넣으시며 솥뚜껑을 여시던 엄마가 말씀하셨습니다.
“다 됐구나! 부엌칼 이리 내라.” 엄마는 김이 쏟아져 오르는 솥 안을 들여다보시며 피자를 자르듯 감자점떡에 칼집을 내십니다.
우리들은 감자점떡을 받아먹으려고 벌써부터 토란 잎사귀와 피마자 잎을 떼어 물에 씻어 들고 기다립니다.
“옛다. 우선 아버지부터 드려라!” 엄마는 늘 아버지밖에 모르십니다.
아버지 먼저 드려라, 아버지 먼저 잡수면 먹어라. 아버지, 아버지… 우리들은 맨 보리밥만 주시면서 아버지는 쌀이 많은 밥을 맨 먼저 퍼 드립니다.
지금처럼 쌀이 귀할 철이면 우리들에겐 감자만 너 댓 개씩 퍼 주시면서 아버진 보리쌀이 듬성듬성 들어 있는 밥을 드리십니다.
어머니께서 큰 나무주걱으로 떠낸 감자점떡은 정말 맛있어 보입니다.
밑에 깔린 감자가 노롯노롯하게 익었습니다. 피자를 썰 듯 큰 부엌칼로 썰어낸 감자점떡은 우리에겐 최고의 간식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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