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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용 칼럼] 불명확한 ‘포천 600년’은 곤란하다


이희용 기자 / heeyeong1@hanmail.net입력 : 2012년 02월 27일
↑↑ 이희용 칼럼니스트, 포천신문 자문위원
ⓒ (주)포천신문사
필자는 지난해 본지 7월 30일자에서 포천시가 2011년 7월 22일 포천시청 시정회의실에서 2013년 “포천 600년”을 맞아 기념사업인 ‘디지털포천문화대전’ 편찬 착수보고회를 개최한 것에 대한 글을 게재한 바 있다.

그 내용에는 포천이라는 지명의 사용 시기를 600년으로 특정한 것에 대하여, 포천군지에 기록에는 처음 지명을 사용한 시점을 고려 성종 때인 995년으로 기록한 내용을 제시하며, 이를 바꿀만한 확실한 반증의 자료와 학계의 고증과 관련위원회의 심의 의결을 통해야 기록을 변경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또한 역사를 아전인수로 해석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며 특히 정체성과 관련해 논란이 될 수 있는 사업을 추진할 때는, 그 시작에 앞서 확실한 사실을 충분히 확인할 필요가 있으며 시기를 특정 하는 사업은 한번 오류를 범하면, 그 결과로 사업자체의 의미를 상실할 수 있다는 것을 염려하며, 포천군지 편찬과 관련된 집필위원의 자문을 받아 온전한 확인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이렇게 의견을 제시했던 필자는 제1차 포천시 연혁검토 위원회에는 초대하지 않았으며, 11월 8일 제2차 검토위원회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여기서 1984년 군지 연혁을 기록하신 원로들과 집필위원 그리고 포천시의 용역관련 교수들이 초대되었는데 지명사용 시점에 대해서 지역원로와 교수들은 현격한 의견차를 보이게 되었다.

이때 포천시가 제시한 회의 자료에는 “1984년 포천군지에 수록된 내용은 당시 군지를 집필한 필자가 추측하여 쓴 것으로 보이며, 고려성종 때 포천지명 사용에 대한 기록은 없으며 간행시 오류로 판단된다”는 자료를 배포하였다.

그러나 1984년 당시 군지 연혁을 집필하셨던 원로께서는 보관하고 있던 당시 집필 자료였던 판본이 다른 동국여지승람과 경기도사 등 여러 가지 근거를 제시하며 어떻게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이 추측으로 할 수가 있느냐고 역정을 내셨으며, 결국에는 내용을 기안한 학예연구사가 죄송하다는 사과를 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군지 집필에 관여했던 원로들은 고려 성종 때 포천이라는 지명을 사용했다는 기록은 근거자료가 명백하고, 실록에도 포천으로 기록한 내용이 여러 번 등장하며, 건치연혁에도 태종13년 계사년에 현감으로 고쳤다는 내용은 있으나, 포천으로 고쳤다는 내용이 없는 것은 이미 포천이라는 지명을 사용한 것이며, 이런 근거에 의해 성문화된 기록을 고치려한다면, 고치려는 사람이 확실한 근거를 제시하라고 했다.

예를 들면 “1414년 용구와 처인을 병합하여 용인으로 했다”는 내용과 같은 명확한 근거자료가 없으면, 편의에 의해서 고칠 수 없다는 의견을 강력하게 제시하여 결국은 위원장인 부시장이 차기 위원회에서 의논하기로 하자며 위원회를 마친 바 있다.

그 후 600년에 대한 별다른 논의나 발표 없이 잠잠하였는데, 지난 2월 24일 시의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체계적으로 정립하고 발전시키고자 ‘마홀과 양골에서 포천까지’ 라는 주제로 포천 역사 정체성 확립 학술 심포지엄을 기술적으로 개최했다.

그런데 이 자리에는 무슨 이유에선지 포천600년에 대한 이견을 제시했던 필자와, 지난 지명검토위원회에 참여했던 군지 집필위원들은 토론자로 초청되지 않았고, 참여한 사람의 대부분은 600년을 지지했던 인사들이었는데, 이번 심포지엄에 방해가 될 것을 염려해서인지, 아니면 별도의 검토 없이 사업을 강행하려 했는지 그 의도가 궁금하기도 하다.

한편 발표된 내용에는 600년으로 특정하려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지만 몇 가지 오류가 있어 정리하고자 한다.

먼저 제2주제 발제자인 박경자 교수의 발표문 중에 “따라서 양주에 속했던 포천지역은 태종 13년(1413) 10월 15일 ‘癸巳年의 例’에 의해 ‘포천’으로 변경되고 현감을 두게 되었던 것이다” 중에 ‘포천’으로 변경되었다는 내용은 현존 어느 사서에도 없다.

뿐만 아니라 ‘포천’이라는 지명사용에 대한 현존 모든 기록의 건치연혁 원문에는 “太宗十三年 改 爲縣監(태종십삼년 개 위현감)”으로 ‘현감’으로 고쳤다는 내용은 있으나, ‘포천’으로 고쳤다는 기록은 없는데, 명예교수인 사학자가 무슨 이유로 이런 발표를 했는지 이유를 묻고 싶고, 이와 관련한 명확한 자료가 있다면 제시해 주었으면 좋겠다.

또한 “『태종실록』13년 10월 15일조에 기록된 ‘계사의 예-州자를 쓴 군현은 모두 山이나 川으로 고쳐라’라는 기록에서 위와 같이 짐작할 수 있다”에도 금주(지금의 금천)에 대한 근거는 명확하게 있지만, 포천으로 고쳤다는 기록이 없는데, 이렇게 짐작으로 역사를 특정해도 되는 것인지 묻고 싶다.

그리고 제3주제 발제자로 발표한 이근호 연구원의 발제 내용 중에는 “실록의 개수가 이루어지면서 당대 사관들의 인식이 그대로 투영되었다는 점을 인식하여야 한다”라는 부분과 “기록 편찬의 이 같은 역사는 실록의 기록이 편찬될 당시의 상황에 따라서 기록될 가능성을 충분히 내포하고 있다”라는 부분인데, 역사를 기록한 사관의 인식이나 상황에 따른 가능성 등으로 현존하는 포천의 지명 역사를 고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시가 기념사업을 준비하는 시기인 2013년이면 차기 지방선거가 임박한 때인데, 짐작이나 근거가 없는 내용, 그리고 가능성 등으로 그나마 정리되어 있는 기록을 훼손하면서까지, 왜 포천 600년을 기념하기 위해 국비포함 18억의 예산을 투입(언론보도 내용)하려고 하는지 그것이 알고 싶을 뿐이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불황의 터널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일회성보다는 주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니,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을 접고 시민에게 실익이 있는 일에 정진해 주기를 진심으로 건의하는 바이다.

이희용 /
대진대학교 동양철학 박사과정, 시인, 제3대 포천시예총회장, 광릉숲생태문학회장, 칼럼니스트, 한국스카우트 경기북부연맹 감사, 전 경기도예총부회장, 포천신문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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