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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출 에세이=29] 워낭소리 멀어지고


김형출 기자 / mjmc00@hanmail.net입력 : 2012년 02월 25일
 
↑↑ 김형출 시인, 수필가
ⓒ (주)포천신문사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로 전국은 한때 시끌벅적했다. 젊은 영화인이 연출한 워낭소리는 늙은 노부부와 30년을 키워온 마흔 살 된 늙은 소의 이야기를 통해 가장 소박한 감정을 그렸다는 점에서 관객들이 열광하는 것이었다. 점점 각박해져 가는 세상에서 웃음과 감동에 목말라하고 하고 있는 이때에, 워낭소리는 한 모금 샘물처럼 우리의 갈증을 없애줬던 작품이었다. 이에 사람들은 여든에 가까운 노부와 그리고 늙은 소가 전하는 이야기에 눈물 흘리며 공감하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30년 넘게 생사고락을 함께한 마흔 살 소를 떠나보내야 하는 늙은 농부의 일상을 담은 인간다큐멘터리다. 젊은 날 소와 함께 땅을 일구며 9남매를 길렀으나 이제는 늙고 병들어 60년 가까이 그를 지켜온 할머니로부터 매일 타박을 받지만 늙은 할아버지는 사랑하는 할머니의 타박을 다 받아 드린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지 중 한 곳인 경북 봉화를 배경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노부부와 늙은 소가 빚어내는 먹먹한 일상이 자연의 순리대로 따르고 있는지 많은 생각을 되새기게 한다.

나 역시 덕유산과 기백산이 병풍처럼 둘러친 ‘장숫골(長壽谷)’ 산골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농촌에서 보냈다. 고향이 촌이다 보니 감회가 새롭다. 오지는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지는 곳이라 겨울이면 실제보다 한결 춥게 느껴진다. 봄이 되면 진달래, 개나리가 만발하고 논두렁 밭두렁은 파릇파릇 봄나물이 돋아나 향기가 그윽하다. 쨍쨍 내리쬐는 여름의 긴 하루는 온통 녹색으로 싱그럽고 개구쟁이들은 ‘지우천(智雨川)’에서 멱 감고 노는 재미로 하루가 가는 줄도 모른다.

여름이 저만치 물러가면 오곡백과가 풍성한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이 성큼 다가온다. 울긋불긋 온통 불타고 있는 가을의 정취는 높디높은 파란 하늘조차도 질투한다. 이처럼 산촌 풍경은 한 폭의 산수화처럼 수려하지만 반면에 살림살이는 늘 가난했다. 고향 산골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가난의 대물림을 끊을 방법이 없었다. 그저 죽으나 사나 흙과 함께하는 생활이었다.

돌아보면 꿈과 낭만, 가난과 애환이 교차했던 유년을 잊을 수가 없다. 농촌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다는 그 자체가 얼마나 값지고 자랑스러운지 모른다. 나의 뿌리가 있고 내 꿈을 키워주던 곳, 가난 속에 풍요로움이 넘쳐났던 곳, 그곳은 언제나 나를 지켜보고 있다. 굴뚝에서는 뽀얀 연기가 꼼지락 피어오르고 구수한 쇠죽 끓이는 냄새는 향기롭다. 무쇠 가마솥에 끓여대던 쇠죽냄새가 어찌나 구수하던지 나의 코끝을 자극했다.

마구간에 누렁이는 댕그랑 댕그랑 워낭소리 울리며 달덩이 같은 큰 눈을 끔벅이며 입맛을 다신다. 워낭소리는 어린 시절 나와 함께했던 가장 순박했던 방울 소리요, 자연의 소리였다. 우리가 잊고 지내기에 십상인 지난날의 삶이 고스란히 배어있기에, 우리들의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형 누나, 동생뿐 아니라 동물들까지 고달픈 나날이었다. 허기졌던 흔적도 금이 간 기억들조차도 가물가물 잊히고 있지만 잊지 말아야 할 삶의 가치이다. 하루하루를 각박한 시간 속에 구겨 넣고 삶에 쫓기다 보니 정겨웠던 참모습들을 너무 빨리 잊어버리는 것 같아 마음이 답답하다.

누렁이 쇠고리에서 댕그랑, 댕그랑, 짤랑짤랑 울리던 워낭소리는 점점 멀어져 간다. 작은방 아궁이에서는 장작불이 날름거리고 가마솥에서는 쇠죽냄새가 맛있었다. 누렁이의 등가죽에서 멍석 이불도 보았고 짚신도 보았고 선한 눈망울에서 흐르는 눈물도 보았다. 이 눈물은 누렁이의 눈물만은 아닐 것이다. 고달프고 가난했던 지날 날의 우리 부모·형제 모두의 눈물이기도 하다.
땡볕이 쨍쨍 내리쬐는 어느 여름날 아침 나는 일찍 아버지를 따라 형과 함께 달구지에 올라탔다.

‘장숫골’ 향하는 자갈길은 울퉁불퉁하다. 누렁이가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자갈길에서 뽀얀 연기가 흩어졌다. 달구지는 덜커덩덜커덩 삐걱삐걱 힘겨워하면서 깊은 골짜기로 향했다. 얼마 후 ‘매바위’ 아래쪽에 도착하여 도로가에 달구지를 세워놓고 누렁이를 몰고 지우천을 건너 풀이 무성한 언저리로 갔다. 지난날의 추억만이 아니다.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흑백 필름 속의 그리움이다.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노동의 가치, 우리의 삶이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값진 시간이다.

죽음이 자연의 섭리라면 그 불안한 숙명을 강조하는 존재이다. 주변의 모든 것들은 노부부와 소에게 자신들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환기하다. 하지만, 그들은 무엇이 닥쳐올지 지금까지의 삶이 어떤 의미인지를 고뇌하지 않는다. 그럴 시간도 그럴 이유도 없었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묵묵히 받아들이며 버티는 것만이 유일한 삶이었던 이 늙고 외로움 존재는 오로지 자신을 희생시키며 자연에 묻히는 것이다. 평생 남을 위해 죽도록 희생만 강요당한 노동의 가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의 뿌리가 어디인지, 꼭 기억해야만 한다. 워낭소리를 듣노라면 ‘슬프다’며 화가 나는데 그 이유는 모르겠다.

김형출 / 시인, 수필가
김형출 기자 / mjmc00@hanmail.net입력 : 2012년 0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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