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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용 칼럼] 세치 혀의 능력이 필요하다


이희용 기자 / heeyeong1@hanmail.net입력 : 2012년 02월 19일
↑↑ 이희용 칼럼니스트, 포천신문 자문위원
ⓒ (주)포천신문사
서기 993년 고려의 북진정책과 친송외교에 불안을 느낀 거란은 동경유수 소손녕이 이끄는 80만 대군으로 고려를 침략했다. 조정은 이미 여진을 통해 거란의 침공계획을 알고 있는 상태였다.

거란군은 순식간에 청천강 이북까지 밀고 내려와 봉산성을 함락하고 수많은 고려군을 생포하기에 이른다. 이 승리에 기세가 등등 해진 소손녕은 “우리는 옛 고구려 땅에다 나라를 세웠다. 그런데도 너희들이 자꾸만 우리의 영토를 침범하니 이에 내가 너희를 응징하러왔으니 목숨이 아깝거든 즉시 항복하라.”는 내용의 서신을 고려조정에 보낸다.

이 서신을 받은 고려조정은 거란과 일단 화친을 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뒤에 사신을 보내 침범의 이유를 물어 보았더니, 소손녕은 “임금과 신하들이 백성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아 하늘을 대신해서 응징하기 위함이다.”라고 엄포를 놓으며 항복하라는 위협을 되풀이했다.

이에 공포에 질린 고려 조정에서는 항복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평양이북의 땅을 떼어주고 화의하자는 의견이 우세한가운데 전전긍긍하였다. 그러나 이때 내사시랑 서희는 태조 이래로 영토를 빼앗긴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음을 주장하며 순순히 영토를 내어준다면, 자손만대에 수치로 남을 것이라고 강력하게 반박하며 나섰다.

서희는 거란의 출병 목적이 영토 확장에 있지 않고, 고려와 송나라 사이에서 속히 전쟁을 끝내야 하는 거란의 약점을 간파하고 있었기에, 거란과의 담판을 강력히 주장하였고 민간어사 이지백의 지지로 왕의 허락을 받았다. 이때 소손녕은 청천강 남쪽의 안융진을 공격하다가 고려군 중랑장 대도수에게 패하자 주춤하면서 고려와의 담판에 응하게 된다.

당당하게 거란 진영에 도착한 서희는, 소손녕이 신하의 예로 뜰에서 절할 것을 요구하자 이를 거절하여 서로 대등한 예를 행하고 대좌하도록 했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침입한 이유를 따져 물었다. 이에 소손녕은 첫째 고려는 신라 땅에서 일어났는데도 거란이 소유하고 있는 고구려 땅을 침식하고 있으며, 둘째 거란과 땅을 접하고 있으면서도 바다 건너 송나라를 섬기기 때문이다, 땅을 떼어 바치고 조빙(朝聘)을 하면 무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하여 서희는 "우리나라는 고구려의 옛 터전을 이은 나라이기에 고려라 이름 하였고 평양을 도읍으로 삼은 것이다. 만일 땅의 경계를 논한다면 요나라의 동경(지금의 요양)도 모두 우리 땅이니 어찌 우리가 빼앗았다고 할 수가 있겠는가?

또 압록강 안팎도 우리 영토인데 지금은 여진이 그곳에 들어와 살면서 흉악한 짓을 일삼으며 길을 가로막고 있으니, 무슨 수로 귀국에 사신을 보내겠소. 조빙을 통하지 못한 것은 여진 때문이니 여진을 쫓아내고 우리의 옛 땅을 되찾아 성보(城堡)를 쌓고 도로를 통하게 하면 감히 조빙을 닦지 않겠는가?"라고 대답했다.

이는 고려의 북진정책이 역사적으로 타당함을 밝히고, 고려와 거란의 외교관계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그 중간에 위치한 여진족을 평정해야 한다는 것을 선결조건을 공동으로 해결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송과의 전쟁이 더 급한 사안이었던 거란은, 이러한 서희의 제안을 인정하고 고려가 압록강 동쪽 280리의 땅을 개척하는 데도 동의하는 서신을 보내오면서 군사를 돌이켰으며, 오히려 낙타 열 마리, 말 백마리, 양 천마리, 비단 오백 필을 선물로 주었는데. 이는 약속을 이행해 달라는 의미도 있었지만 회군할 때 공격하지 말라는 일종의 뇌물이기도 했다.

이듬해 서희는 압록강 동쪽의 여진족을 몰아내고 평 강동6주에 성을 쌓아 이 지역을 다시 우리 영토로 편입시키는 데 크게 공헌했다. 이 강동6주는 훗날 두만강까지 진출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도 했다.

병서에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상이 계책이라는 내용이 있다. 서희가 이렇게 세치 혀로 거란의 80만 대군을 물리칠 수 있던 것은, 풍부한 정보력에 의한 국제정세를 잘 파악하고 있었기에 힘의 열세에 있는 상황에서도, 두둑한 배짱으로 떳떳하게 압록강유역의 땅을 요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정확한 정보는 위험한 상황을 미리 예측해낼 수 있어서 어떤 곤란한 협상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다는 것을 서희의 담판은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국제적인 사안이 있을 때마다 불평등한 조약이라는 걸과를 내보이고 있으니, 정보에 밝고 상대와 조화를 이루는 능숙하고 융통성 있는 역할이 아쉽기도 하다.

특히 주민을 대표하는 자리에 있는 인물이, 현안에 닥쳐서는 말 한마디 못하고 상대에게 끌려 다니다가 결국에는 실익 없는 합의에 도달하게 된다면, 그 순간 대표로서의 의미를 잃게 되는 것이다, 이는 정치적인 합의나 사업예산과 관련해서는 더욱 예민하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새로운 대표를 선출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아무쪼록 대표로 나서는 사람들 중에서, 국내·외적 정세나 상대에 대한 풍부한 정보력과 충분한 경험을 갖춘 인물이나, 정직한 노력으로 탁월한 언변을 발휘해서 우리고장에 실질적인 이익을 끌어올 수 있는 인물이 뽑혀서, 세치 혀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여 꼬여있는 현안을 잘 풀어나갔으면 좋겠다.

이 희 용
대진대학교 철학과 박사과정, 제3대 포천시예총 회장, 광릉숲생태문학회장, 칼럼니스트, 한국스카우트 경기북부연맹 감사, 희곡작가, 전 경기도예총부회장, 포천신문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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