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KBS2에서 방영하는 개그콘서트가 큰 인기다. 여러 코너들이 저마다 특색있는 개성적 코미디로 폭소를 이끌어 내 힘든 일상에 지친 시민들의 시름을 잠시 잊게 한다. 개콘의 높은 인기 탓에 다른 방송 채널들도 다시 개그 프로를 부활시킬 정도이다. 한 때 썰렁 개그로 시청자들을 다 쫓아내다시피 하더니 요즘 개콘은 개과천선(?)한 마냥 우리들 웃음의 발화점을 기막히게 포착해 내고 있다.
한때 ‘소는 누가 키울거야’라는 유행어를 만들어 내면서 남녀의 완고한 자기주장을 풍자하던 <두 분 토론>, 늘상 이별을 애기하면서도 자기 먹을 건 다 챙기는 젊은 남녀를 희화화 한 <생활의 발견>, 자기 몸만 중한 줄 아는 심각한 자기 도취증세의 여배우를 희화화 한 <최종병기 그녀> 등 우리들 일상에서 무심코 보아 넘기는 인간적 허점들을 날카롭게 짚어내 희화화하는 것이 개콘의 인기 비결이다.
개콘의 여러 코너 중에도 요즘 가장 인기있는 코너는 <비상대책위원회>이다. 이 코너의 주역인 개그맨 김원효가 요즘 인기상한가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예전에 보지 못하던 높은 수준의 코미디를 선보이는 이 프로의 인기 비결이 무엇인가를 따져보는 것은 요즘 우리 사회를 돌아보는 하나의 수준자 역할에 해당하는 의의가 있을 성싶다.
원래 웃음이란 프랑스의 철학자 베르그송에 의하면 남의 어리석음과 저열함을 봄으로써 터져 나온다. 남의 바보스런 행동이나 말을 보고 나는 저러지 않지 하는 우월감이 웃음을 촉발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진정한 웃음은 남의 바보스러움 뿐만 아니라 자기까지 포함한 인간 일반의 어리석음을 보여주면서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 고품격이거니와 우리는 이것을 풍자(satite)라 한다.
개콘 비대위는 이를 잘 활용한다. <비상대책위원회>란 코너명부터가 그렇다. 우리 사회엔 비상대책위원회가 얼마나 많은가? 흔히 ‘비대위’란 축약어로 불리는 이 기구는 지금도 위기에 몰린 집권여당이 운영하고 있지만 정치권뿐만 아니라 여러 집단.분야에 비대위는 걸핏하면 등장한다. 그러나 실인즉 이 기구의 효율성은 항상 의문부호를 거느린다. 경찰서장 역할의 김원효, 특수부대 장군 역할의 김준현이 황당한 변명, 터무니없는 대책을 일삼아 시청자들의 폭소를 유발하는 것은 현실 권력의 이러한 맹점을 기막히게 짚어낸 것이다.
실상 김원효는 우리 사회가 비대위, 비대위 하는데 그 비대위가 대부분 탁상공론을 일삼는 데서 이러한 개그를 착안했다 하니 그의 기지가 놀랍다. 특히 경찰서장, 특수부대 장군 등 강압적 권력을 가진 인물들을 풍자의 대상으로 설정한 데서 그 기지의 놀라움이 한층 돋보인다.
개콘 비대위의 놀라운 유머 감각은 언어유희를 놀라울 정도로 잘 활용하는 언어감각에서도 발견된다. 그 언어유희는 대개 터무니없는 말잇기의 성격을 띠고 있다.
가령 경찰서장 역인 김원효는 10분 안에 테러범을 진압해야 하는 임무를 앞에 두고 헛된 망상을 늘어 놓는다. “만약 내가 이 상황을 해결 못하면 잘려서 집에서 놀겠지. 놀다가 공원으로 나가 불량배들을 만나겠지. 나는 싸움을 잘 하니까 그 놈들과 너무 잘 싸워서 놈들의 우두머리가 되겠지. 그래서 나는 조폭 두목이 되겠지. 그러면 나는 어떡해?” 라는 식의 황당한 자기도취로 시청자들을 웃기는데, 말꼬리 잇기식 언어유희를 기막히게 활용한 경우이다.
뚱뚱한 특전사 장군 김준현을 두고 엄친아가 아니라 ‘아친아’ ― 아빠 친구분 아니세요?라고 놀리는 식으로 풍성하게 발휘되는 언어유희는 이 코너의 놀라운 자질이다.
그런데 이러한 언어유희가 말장난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의 허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풍자적 웃음을 넘어 현대를 사는 인간 일반의 허점을 짚어내는 데까지 이르는 데서는 문학적 품격마저 획득한다. 경찰서장 역인 김원효가 10분 내에 테러를 진압해야 하는 임무에 맞닥뜨리자, 우선 그러면 먼저 청장님께 보고해야겠지, 그러면 청장님은 회의 중이라 조금 있다 전화하라고 하겠지, 조금 있다 또 하면 지금 화장실 가셨다 하겠지, 등으로 이어지는 말장난은 우리 사회의 관료적 습성을 날카롭게 풍자한 경우이다.
그러나 위에서 든 것처럼 자기망상적 도취로 내가 잘리면 마침내 조폭 두목이 될 거라는 어이없는 비약을 일삼는 경찰서장은 나르시즘에 빠진 현대인들의 자화상을 대변한다. 요즘 우리들은 복잡한 사회 구조와 소통이 어려운 시대현실을 만나 누구나 내가 제일이라는 유아주의(唯我主義라 해도 좋고 幼兒主義라 해도 좋을) ― 나르시즘에 빠져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에는 남녀노소의 구별이 없다. 오죽하면 한 걸그룹이 ‘내가 제일 잘 났다’라는 노래까지 들고 나왔을까?
이처럼 풍자를 넘어 우리 시대의 맹점을 짚어내는 데까지 이른 이 코너는 우리 사회의 지적 수준이 매우 높아졌음을 실증하는 사례로 생각된다. 실업자 양산의 주요인이라 하여 비판의 타깃이 되어 있지만 80%를 상회하는 높은 대학진학률이 이러한 지력(知力)의 상승에 일조하지 않았나 본다.
물론 천재적 기지와 연기력을 보여주는 김원효와 김준현이라는 탁월한 두 개그맨, 그 뒤에 숨어있는 작가와 담당 피디의 능력이 결정적 요인인 것은 말할 나위없다. 잘 났거니 하다간 언제 ‘비대위’에 불려나가 웃음거리가 될지 모를 일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흥미진진한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웃음을 금기시한 완고한 수도원장이 웃음을 탐구하려는 수도사들을 살해하는 살인범이 된 것도 웃음의 이러한 성격 탓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