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구조의 변화가 가정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사회가 전문화되면서 가정의 많은 기능들이 학교나 혹은 전문 교육기관으로 이양되고 있다.
표현력이 부족하면 웅변학원에, 학습력이 부족하면 속셈학원에 보낸다. 아이들의 놀이 캠프는 사회단체 캠프로 각각 그 역할이 분화되면서 자녀들이 부모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해졌다.
그래서 대화를 하자고 강조하고, 대화를 위한 사회단체의 노력도 있지만 이 부분은 그리 쉽지가 않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가족 놀이문화가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놀이는 즐거움을 주는 행위이기도 하지만 가족간의 공동체의식과 가족의 추억을 만드는 도구이기도 하다.
사회가 아무리 어려운 때라도 가족간의 신뢰감만 있으면 이겨내지 못할 게 없다.
나들이 철을 맞이하여 한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부부의 대화를 들어보자.
"우리 이번에 아이들하고 야외 좀 나갑시다. 답답하기도 하고 어렵기도 한데 기분전환이라도 합시다. 음... 어디로 나갈까요?"
"자연 속에서 놀 수 있는 기회도 만들어줄 겸, 이왕이면 놀이동산에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하지, 당신이 음식 준비하고 내가 교통편 준비를 하지."
얼핏 보아 이 대화에 문제가 전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한 번 더 생각해 보아야 할 내용이 있다. 바로 나들이의 주체가 언급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를 위한 것인지, 가족공동체 문화를 만들기 위한 것인지, 부모 자신의 기분 전환을 위한 것인지가 모호하다.
나들이를 준비할 때 부모가 제일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바로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하는 문제다. 나이 어린 자녀를 위한 나들이라면 당연히 아이를 위한 내용으로 준비되어야 하고, 부모를 위한 나들이 라면 자녀의 양해를 얻어야 한다.
그러나 매번 우리의 나들이 문화는 이러한 주체가 확인되기보다는 전체적인 나들이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게 애매모호해져 버린다.
예를 들어보자.
동물원에 가서 부모는 자녀들에게 동물들의 모습을 보게 하려고 우리 앞에 데려 가려고 한다.
그러나 아이는 동물보다 꽃밭 속에서 놀고 싶어 자꾸 고개를 딴데로 돌린다.
그러자 이를 본 부모는 어떻게든 아이에게 동물을 보여 주고 싶어서 어깨동무를 해서 아이의 시선을 잡아매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아이가 동물을 보았다고 해보자.
과연 이 날 아이가 본 것은 무엇일까? 동물? 꽃? 결국 아이는 아무것도 보고 즐기지 못한 것이 되고 만다.
이런 상황을 보고 필자는 ‘달리는 부모와 걷는 아이들”이라고 표현한다.
여기서 부모가 달린다는 것은,
1) 목표지향적이며,
2) 시행착오를 최소화해야 하고,
3) 비용만큼의 효과를 얻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자녀가 걷는다는 것은,
1) 시행착오를 통해서 배우며
2) 시간이 많이 소요되더라도
3) 여러 가지를 보면서 흥미를 채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부모와 자녀의 시각 차이가 크기 때문에 나들이를 다녀와서도 즐겁기는 커녕 피곤하기만 할 뿐,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다.
결국 우리는 나들이 준비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먼저 누구를 위한 나들이인가를 확인하고, 활동 주인공에 맞춰 내용을 구성하고 마지막으로 어떤 방법으로 자녀와 의사결정을 할 것인가를 미리 확인해야 한다.
"철수야, 우리 이번 주말에 놀이동산에 가자. 가서 아빠하고 재미있게 놀다 오자."
이런 형태의 말은 자녀에게 놀이문화에 참여하게 될 동기나 흥미를 효과적으로 유발시키지 못한다.
이런 방법보다는 가고 싶은 곳이 어디인지를 물어 보고 가능하다면 그곳을 다녀오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효과적으로 나들이를 준비하려면 우선 어떤 목적으로 나들이를 가려고 하는지 그 의미를 전해 주고, 가고 싶은 곳이 어디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서로 의견을 교환해 보아야 한다.
이것이 결정되면 결정된 내용과 관련된 여러 가지 자료를 수집하여 그것을 중심으로 목적지를 정한 다음 어떤 길로 갈 것이며 차안에서 어떤 주제로 이야기할 것인가 하는 것까지도 준비해야 한다.
예를 들어 바다를 보고 싶어 하는 자녀에게 바다를 보여 주기 위하여 어떠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알아보자.
우선 왜 바다를 보고 싶어하는지 확인한 후 그 목적에 따라서 항구로 갈 것인가, 아니면 갯벌이 넓은 곳으로 갈 것인가, 모래사장이 근사한 곳으로 갈 것인가 하는 점들을 결정한다.
그 후에 지도를 구하여 집에서 목적지까지 어떤 길로 다녀왔으면 좋겠는지 서로 의견을 나누면 준비는 거의다 된 것으로 봐도 된다.
그런 과정 속에서 자녀들이 나들이의 의미를 파악할 뿐더러 동기화도 되어 가족과의 추억을 만들 수 있다.
이 과정은 가정의 교육적 기능 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간 장소도 중요하지만 자녀들의 마음속에 더 오래 남는 것은 그 곳에 가는 동안 어떤 기분과 재미를 느꼈는가이다.
부모와 함께 다녀온 제주도보다는 제주도에서 부모와 어떤 얘기를 주고 받았는지에 따라 나들이의 추억과 의미가 결정된다.
그런데 요즘 같은 때 여행을 하면서 놓치기 쉬운 것이 바로 차 안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낼 것인가이다.
요즘같이 교통난이 심할 때는 미리 그것을 감안하여 유익한 것이나 재미난 활동을 한두 개쯤 준비해 두는 것도 지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들이를 가는 차내에서의 풍경은 고작,
음식을 나누어 먹거나, 아빠는 운전을 하고 아이들은 잠을 자거나 음악을 듣고, 엄마는 창밖을 내다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
이럴 바엔 차라리 자녀들과 끝말 이어가기를 한다든지,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재미난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준다든지, 자녀들이 최근 관심을 지니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다.
좀더 욕심을 부리자면 여행하는 곳에 얽힌 전설이나 설화를 이야기해 주는 것도 좋고 그곳의 역사적 의미를 들려준다면 더 좋겠다.
물론 이런 여행을 위해서는 부모가 여행 전에 미리 자료를 준비해 두어야 한다.
필자의 경우는 여행을 준비할 때마다 ‘우리집 추억 노트’라는 걸 만든다. 이 노트에 여행 지와 관련된 도로안내 지도, 중간 중간의 휴게실, 중간에 들릴 만한 곳 그리고 그곳에서의 추억 등을 아이들이 직접 기록하게 한다.
특히 여행 중간 차 안에서 얘기해 줄 수 있는 재미있는 한자성어, 혹은 역사 이야기 등을 준비해 아이들과 하나가 되는 시간을 만든다.
그 결과 우리 가족이 다녀온 곳은 거의 모두 ‘우리집 추억 노트’에 담겨 있다.
내용은 물론이 고 아이들과 엄마, 아빠가 주고 받은 이야기까지 모두 적혀 있어 가족의 역사책이 되었다.
이처럼 자녀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우리가 가정에서 맞이할 수 있는 소중한 교육장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자녀들이 일상생활에 필요한 사고방식이나 삶의 방식 혹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가정에서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 얻어지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삶의 지혜가 전문 교육기관을 통해서 얻어지리라고 기대한다면 교육적 환상을 기대하고 있는 것과 같다.
성숙한 부모가 된다는 것은 실제로 학식이나 덕망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절실한 것은, 자 녀의 특성을 올바로 이해하고 그에 적절한 대응책을 강구하면서 자녀와 함께 하는 시간에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