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하면 물빛 추억이 아련하다.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뤄왔던 고향길이 가볍지만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내 고향산천은 많이도 변했고, 사람들도 변했다. 아내가 형수님과 통화 중에 ‘주말에 감자를 심는다.’라고 말이 그냥 새어나온 말이지만 모르는 척 외면하기는 어려웠다. 농사일이 얼마나 고단하고 힘든 일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일손이 부족할 때는 ‘지게 작대기도 힘이 된다.’라는 속담처럼, 우리 부모는 그런 고된 일을 평생 하시다가 돌아가셨으니 가슴이 아리다. 밥 한 그릇이 밥상에 올라오기까지를 생각하면 농부들의 땀 한 방울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생각하게 된다.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은 농어촌이 잘 사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요즈음 농촌은 옛날보다 많이 풍요로워졌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행복해졌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귀농하는 사람보다는 이향(離鄕)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도 현실이다. 나의 고향도 예외는 아니다. 개발붐을 타고 도회지 사람들이 이곳저곳 좋은 땅을 사놓고 땅값이 뛰기를 기다리기도 한다. 농사를 열심히 지어봤자 비료 값도 충당하기 어려운데 누가 농사를 지으려고 하겠나, 집집이 연로하신 노인들뿐이다. 고향 인심도 예전만 못하다는 얘기가 들릴 때 나는 우울하다.
말만 들어도 마음 설레는 곳이 고향인데 언제부터 고향은 부담스럽고 외면당하는 땅이 돼버렸다. 고향이란 나의 뿌리와 과거가 있고 정이 든 고향은 내게 형성된 하나의 세계이다. 고향은 내가 살았던 장소와 긴 시간과 잊히지 않는 정을 분리할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따라서 고향은 구체적으로 객관적으로 어느 고을 어떤 지점을 제시할 수도 있고, 언제부터 어느 때까지 살았다는 시간을 제시할 수도 있다. 고향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는 생각에 따라 각인각색이다. 그러나 그리움만큼은 잊을 수 없고, 타향이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공통점이 있다.
사람은 태어난 곳을 고향이라 한다.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난 것은 생물학적 고향이며, 고향이라는 장소에서 태어난 것은 지리학적 고향이다. 고향을 떠나면 출향(出鄕)·이향(離鄕)이요, 타의에 의하여 잃으면 실향(失鄕)이 된다. 고향에 돌아온 것이 귀향(歸鄕)이요, 어쩔 수 없으면 낙향(落鄕)이다. 그러고 보면 고향에 그대로 눌러앉은 사람,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 그리고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 등으로 분류가 된다. 이국땅에서 고향은 고국이다. 이때 고국을 그리는 교포는 타국살이이며 나라를 빼앗기는 경우, 망국인이 되는 것이다.
새벽 4시 반 경에 집에서 출발하여 고향에 도착한 아침 8시경까지 머릿속에 재생되는 그림은 고향의 추억이다. 부모가 살아계실 적에는 그래도 일 년에 서너 차례 고향에 내려갔었다. 앞마당에 승용차 소리가 나면 어머니는 얼굴을 빠끔히 내미시면서 “출아! 왔나” “혼자 왔나?” 반가워하셨다. “혼자 온 걸 보니 동창회 왔나 보네.” 나는 늘 이렇게 삐쭉 얼굴만 내비치다가 귀경하곤 했었다. 하루 이틀 농사일을 조금 거들어 주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얼마나 고맙게 여기고 행복해하시던지, 그때 어머니의 얼굴이 선하다. 당연한 일을 두고서 아들에게 고맙다니, 그 말을 듣는 나는 코끝이 찡했다. “어머니도 별 말씀을 다하세요.” 햇볕에 그을린 당신의 구릿빛 얼굴엔 세월만큼이나 주름살만 가득하다. 어머니는 살아생전 고향 외, 어떤 곳에서도 살기를 거부하셨고 오로지 고향이다. “나는 내 집 내방에서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눈을 감겠다.”는 말을 여러 번 하셨다. 그 말대로 어머니는 아무도 모르게 당신 방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지금도 부모님의 임종을 보지 못한 불효자의 죄책감에 고개를 숙이곤 한다.
지금 어머니의 빈자리를 형님이 이어받고 있다. 형님이 정말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었다. 내 어린 시절 기억에는 형님은 농사일하지 않았다. 집안의 장남으로서 태어나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 했다. 일은 일꾼들에게 맡겼다. 물론, 나도 못줄이나 꼴 한 망태 정도였지 농사일은 하지 않았다. 그냥 개구쟁이로 마냥 뛰어놀았다. 그런 형님이 이젠 농사꾼이 다 되었으니 어머니가 형님으로 환생해왔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부지런하신 것이 어머니를 빼닮았다. 어머니는 연약한 몸으로 온갖 일을 다 하셨다. 흙일이 인생 전부로, 어머니의 흙 사랑은 자식 사랑과도 같으셨다. 고향 집에 가면 어머니의 손때가 묻지 않은 곳이 없다. ‘장산불’ 밭뙈기에는 어머니의 눈물이 밭고랑에 묻어나고, 가을이면 ‘집풍골’ 고추밭에 자식들이 주렁주렁 매달렸고, ‘힌걸논’ 논바닥에는 어머니의 발자국이 아직 남아 있다. 오로지 흙과 함께하신 내 어머니는 진정한 농사꾼이셨다.
형님은 나에게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담갔다는 20년 된 간장을 통에 넣어 주셨다. 간장을 약지로 찍어 맛을 보니 틀림없는 어머니 손맛이다. 텃밭에는 장다리 잎이 푸릇푸릇하다. 부엌에서 어머니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고향의 밤은 호젓하기만 하다. 불을 밝힌 채 큰 누님과 자형, 형수와 형님 처와 함께 오순도순 둘러앉아 고향이야기와 세상이야기로 밤은 깊어만 갔다. 우리 인생은 또 다른 고향을 위해 길고 긴 여정을 준비 중이다. 고향 그림자와 동행하며 발자국 하나를 남기는 것처럼 고향에 발자국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