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나이 40이면 자기 일에 책임을 지라고 누군가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의 경우는 30대 후반에 의원출마를 나서서 처음 낙선의 고배를 마신 순간 부모형제들,그리고 아내와 자녀들에게 한없는 미안함과 송구스런 마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역 주민들의 성원으로 다음 의원에 당선된 이후 나름대로 소신을 갖고 지역발전을 위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43번 국도가 운천리를 우회하면서 중앙통과 연결시킨 일,토지보상업무로 주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서울지방국토관리청을 3년여간 오가면서 주민 재산권 보호에 나섰던 일은 지금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특히 초선에 당선된 첫해 1997년 포천지역에서도 수해 없는 지역으로 소문난 영북면이 하루 강수량 800mm를 기록하면서 부소천 일대를 비롯해서, 자일리,야미천,대회선천 등이 일시에 범람하여 한밤중에 운천3․8리 주민들을 영북초등학교로 대피시키면서 긴박하게 움직였던 일은 지금도 아찔한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위기를 기회로 삼아 수해로부터 주민들을 안전하게 지켜야 겠다는 일념으로 부소천 제방에 옹벽을 설치토록 행정관청에 촉구하여 수십억원의 예산을 들여 당대에서는 수해의 위험으로부터 운천주민들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게 된 것을 매우 보람있게 생각합니다.
또한, 운천리 및 자일리 경지정리 지역에 대한 농로 및 수로를 완벽하게 정비하여 농민들이 마음껏 풍년농사를 거둘 수 있도록 한 일도 제가 의원임기중에 이룩한 자랑스러운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울러,1998년도부터 산정리 우물목에 팩키지 마을을 건설토록 하여 주민들이 민박마을을 조성하므로써 농가소득증대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으며, 약 10억원을 투입하여 영북중학교 진입로를 개설하여 학생들이 안정하게 통학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과정에서 관할 군부대와 협의를 위해 겪었던 어려움 등은 지역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고 감히 생각됩니다.
특히, 영북하수종말처리장내에 주민친화시설을 설치하면서 영북면 생활체육활성화를 위해 축구장을 포함한 종합체육시설을 설치하려고 의회차원에서 강력하게 추진하자 관련 공무원들은 다음 선거까지 업무추진을 미루는 등 보이지 않는 갈등을 겪으면서 섭섭한 마음과 함께 심지어 야속하게도 느껴졌습니다. 특히 저의 본 마음을 오해하여 조기 축구회원들과 의견대립이 있었던 일은 한 때 즐거운 추억으로 돌리고 싶습니다. 또한 제 나름대로는 지역발전기금을 마련하여 영북면 지역의 활성화를 도모하고자 산정호수 골프장을 상대로 기금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받았던 오해들은 지금도 씁쓸한 기억으로 남습니다. 그러나 그 기금을 이용해서 매년 영북 초․중․고 졸업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불우이웃돕기,군부대 위문, 경로당 및 체육회 지원 등을 하면서 느끼는 뿌듯한 감정은 무보수 명예직 지방의원으로서 정말 감회가 새롭습니다.
이제 영북면은 접경지역개발사업과 함께 새롭게 발전할 기회를 맞이하였습니다. 포천시내 14개 읍면동중 영북면에만 유일하게 2개의 국책사업이 확정되어 야미리에 약 14만평 규모로 건설될 영북산업단지와 산정호수 종합리조트 개발사업이 완공되는 2014년경에는 ?더불어 사는 영북, 살기좋은 영북면?이 이루어 질 것으로 확신합니다.
저는 훗날 공직을 떠난 후에라도 지역주민들과의 멀고 가가운 인간관계에 의해서가 아니라. 제가 추진한 업무실적으로 평가받겠다는 소신을 가지고 남은 임기동안 최선을 다해 일하겠습니다. 아울러, 주민들의 변함없으신 성원에 힘입어 일에 대한 욕심, 열정 넘치는 의욕을 가지고 선택과 집중의 원리에 의한 포천시 발전에 큰 업적을 남길 수 있기를 강력히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