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어떤 문제(問題)를 해결하지 못하고 쩔쩔 매고 있을 때 ‘미궁(迷宮)에 빠져 있다’ 거나 ‘미로(迷路)를 헤매고 있다’고 말들 한다. 그러나 미궁의 어원(語源)이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미궁은 그리스 전설(傳說)에 나오는 이야기다. 크레타 왕 미노스의 비(妃) 파시파에가 황소와 관계해 사람의 몸에 소의 머리를 가진 괴물(怪物) 미노타우로스를 낳았다. 이 괴물을 가두기 위해 왕은 명장(明匠) 다이달로스에게 통로(通路)를 온통 꼬불꼬불하게 만들어 한번 들어가면 나오는 문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라비린토스(Labyrinthos)를 만들게 했다. 이 라비린토스가 바로 ‘미궁의 기원(起源)’이다.
이처럼 미궁은 한번 들어가면 나오는 길을 쉽게 찾을 수 없도록 되어 있는 곳을 뜻한다. 장소를 말한다. 밖으로 나오는 길을 좀처럼 찾을 수 없다는 데서 그런 의미(意味)가 생겨난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어떤 사건(事件)이나 문제 따위가 얽혀서 쉽게 해결하지 못하게 된 상태를 일러 ‘미궁에 빠졌다’거나 ‘미궁 속을 헤맨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미궁과 비슷한 단어(單語)로 미로가 있다. ‘미궁이나 미로나 그게 그거 아닌가?’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다르다. 미로는 ‘길’을 말하는 것이고 미궁은 ‘장소’를 말하는 것이다. 미로는 복잡하게 갈래가 져서 한번 들어가면 다시 빠져 나오기 어려운 길을 뜻하는 것이고 미궁은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장소를 뜻하는 것이다. 미궁과 마찬가지로 미로도 해결책을 찾지 못해 갈팡질팡하는 상태를 비유적(比喩的)으로 하는 말이다. 그래서 ‘미로 속을 헤매다’ ‘미로에 빠져 있다’처럼 쓸 수 있다.
물론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상태를 얘기할 때는 미궁과 미로를 서로 바꿔 쓸 수도 있다. 하지만 ‘미로 찾기 퍼즐’을 ‘미궁 찾기 퍼즐’로 할 수는 없다.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단어의 정의(定意)에서 보듯이 ‘미궁은 미로가 설치돼 있는 곳’이고 ‘미로는 길’이다. ‘안내인은 미궁처럼 꼬불꼬불한 복도를 앞장서 가며 우리에게 3층의 다른 객실 몇 곳을 구경시켜주었다’의 경우는 미궁을 미로로 바꿔야 정확(正確)한 표현이다.
미로와 관련된 말 가운데 천신만고(千辛萬苦)라는 말이 있다. ‘천신만고 끝에 미로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천신만고는 천 가지 매운 것과 만 가지 쓴 것이란 뜻이다. 온갖 어려운 고비를 겪으며 심하게 고생함을 이르는 말이다. 신(辛)은 자자형(刺字刑)을 받을 때 심한 고통을 느낀다는 데서 ‘맵다’ ‘괴롭다’라는 뜻을 지니게 된 말이다. 자자형은 죄인의 얼굴이나 팔 같은 곳에 흠을 내어 먹물로 죄명(罪名)을 새겨 넣던 전근대시대의 문신(文身) 형벌이다. 난제(難題)를 해결하려면 그만큼 남모르게 피나는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 뼈를 깎고 살을 에이는 듯한 신고(辛苦)를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천신만고라 하는 것이다.
줄탁동시라는 말도 있다. 줄탁동시란 병아리가 어미닭과 함께 알을 깨고 나오는 모습을 일컽는 말이다. 병아리가 알에서 쪼고 나오려 할 때 어미닭이 밖에서 돕는 것을 줄탁동시라 하는 것이다. 이처럼 병아리가 안에서 쪼고 어미 닭이 밖에서 쪼아야 줄탁동시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부화(孵化)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새가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구에 회자(膾炙)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몽(迷夢)의 껍질을 깨뜨려야 새로운 세계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궁과 미로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줄탁동시가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듯이 상부상조(相扶相助)해야 미궁과 미로에서 헤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독불장군(獨不將軍)이 없음을 깨달아야 하고 상호작용(相互作用)이 있어야 이루어질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