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태어나 자라고 결혼하여 아이들을 키우며 호주로 떠나 17년간의 생활을 하고 고국으로 돌아온 박석호씨는 현재 갈월중학교에 근무하고 있다.
박 씨가 고국을 떠난 후 17년간의 호주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와 생활하면서 한국사회를 다시 바라본 것을 글로 정리했다.
본지는 필자의 소중한 원고를 지면에 게재하여 널리 알림으로써 우리사회의 잘못된 습관을 바로 잡는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10회에 걸쳐 연재키로 한다.
필자 박석호씨는 한양대 산업대학원 전기과를 나와 지난 85년부터 2003년까지 AERENA, SH PARK HOLDING, Australia 대표로 근무했으며 2남1녀를 훌륭하게 교육시켜 장녀는 시드니대 졸업하고 변호사로 NSW주 법무부에 근무하고 있다. 장남은 시드니대를 졸업한 후 치과병원장으로 재직중이며 차남은 시드니대를 졸업하고 변호사로서 S.M 로펌 Senior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편집자주)
박석호(갈월중학교 근무.사진) 어렴풋이 싸움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나 싶어 멍한 상태로 천장을 보고 누워 있으니, 다투는 소리가 분명하게 한국 말이어서 순간적으로 정신이 번쩍들어 나의 잠자리를 살펴보니 평소 내가 자던 침대가 아닌 것을 깨닫고 ?음~, 어제 내가 한국에 돌아 왔었지?라는 생각이 떠올라 눈을 크게 뜨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깥 불빛에 비쳐진 방안을 둘러 보면서 고국에 돌아와 방을 얻어 첫 밤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곧바로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과, 무슨 일로 싸우나 보려고 바깥을 살려보니 승용차끼리 접촉사고를 내어 도로 중안의 일차선에 자동차를 세워 둔 채 두 사람이 서로 삿대질을 하며 다투는 걸 보면서 ?누가 잘못했던간에 왜 저렇게 큰 소리로 싸우지. 사고 났으면 조용히 갓 길로 차를 옮기고 서로 인적 사항을 교환하고 나중에 해결하면서 되는데?라고 생각하는 사이에 두 대의 경찰차가 도착했다. 경찰이 차에서 내려 다투고 있는 두 사람을 제지하면서 귀에 들리지 않았으나 인적 사항과 사고난 경위를 물어보는 것 같았는데, 조사를 받는 중에도 큰 소리로 서로 상대방이 잘못했다고 우기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경찰도 화가 났던지 뭐라고 큰 소리로 나무라자 싸우던 두 운전자가 도로 중앙에 세워둔 자동차를 갓길 차선으로 옮기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다행히 한 밤중이라 운행하는 자동차가 뜸해서 망정이지 한 낮이라면 꽤 교통체증이 생겼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자동차를 옮기지 않고 세워두고 있는 사이에 일차선으로 달리던 차량들이 줄지어 천천히 비껴가고 있는데도 말싸움만 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무례한 행동들인가? 사고차량이 갓길 차선으로 옮겨진 후부터 차량 소통이 원활해지고 경찰은 조사가 끝났는지 두 대의 경찰차에 오르면서 사고 차 운전자가 각 자가 자기 자동차를 운전하고 떠나는 걸 보고서야 경찰차도 가 버렸다. 이렇게 정리가 끝나고 나서야 주변이 조용해 졌고, 2월의 차가운 바람이 몸에 스며들어 약간 몸이 떨리는 추위를 느껴 창문을 닫고 다시 침대에 누우면서 시계를 보니 새벽 한시였다. 그 사이에 나의 잠은 완전히 깨어 버린지라 눈을 말똥거리며 방금 일어난 자동차 사고를 떠 올리며, 거의 이십년 가까이 살았던 호주 시드니에서의 자동차 사고를 생각했다. 그곳에서는 자동차 사고가 나면 곧 경찰에 연락하고, 둘의 합의하에 다른 사람의 교통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갓길 차선으로 자동차를 옮긴 후 서로 운전 면허증을 교환해 면허 번호와 주소, 전화번호 등을 교환하고 , 어느 보험회사에 가입했는지 확인한 후 마지막으로 부딪힌 사고 현황을 그림으로 그리거나 사진촬영을 하고 상대방에게 확인 사인을 받은 다음 조용히 헤어지는데, 고국에 와보니 처음 목격한 일이긴 하지만 사고가 나면 우선 서로의 인적사항을 교환하기 전에 팔부터 걷어 올리고 큰 소리로 싸움을 시작해 상대방을 제압 시키려고 기 싸움을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아직도 우리나라는 후진국에서 벗어 나지 못했나 아니면 사는 것이 힘들어서 화풀이를 하는지 할 수는 없지만, 서울에 온 첫 날밤부터 싸움소리에 잠을 깰 정도니 ?사람들 성질이 아주 고약하구나, 옛날에 살 때는 잘 몰랐었는데, 조심하면서 살아야지?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고국에서의 첫 밤의 싸움소리가 나의 귀국을 환영하는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긴 여행 뒤끝이라 아직도 물에 적신 솜처럼 무겁고 피곤한 몸을 풀려고 다시 잠을 청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