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 학교는 중병에 들어있는 환자임에 틀림없다. 왜 이런 돌발 발언을 하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성숙한 학생들이 연이어 왕따로 인한 자살을 하고 있으니 필자의 진단이 오히려 너무 부드러운 표현을 쓰고 있는지 모른다.
대구에서 중학생이 왕따와 폭력에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하자 마치 유행병이나 되는 양 광주에서도 똑같은 자살의 희생자가 나왔다. 연이어 대전에서도 한 여학생의 왕따 자살과 죽은 친구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견디지 못한 여학생이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는 충격적인 사건이 계속되고 있다.
이렇게 연속적으로 왕따와 학교폭력의 문제가 폭발적으로 제기되자 학교당국은 책임회피를 위해서 덮어두었던 병적 증상을 일시에 노출시키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마치 구원책이나 되는 양 학생들을 성공을 위한 경쟁대열에 내몰았던 한국사회 전체가 교육의 허약성을 여실하게 드러내고 어떤 진단을 내놓아야할지 우왕좌왕하는 혼돈에 빠지고 만 것이다.
교과부는 왕따와 폭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인성교육을 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입시를 위해서 점수와 관계없는 수업은 아예 관심을 보이지 않는 학생들에게 도덕교육을 더 시킨다고 왕따 현상이 해결될 것인가.
인간의 가치를 좋은 대학을 나오고 돈을 잘 버는 능력에 두고 그런 사람만이 인정받는 사회에서 착한 사람이 되라고 외쳐본들 학생들의 귀에 들어갈 리 없다. 교과부는 왕따 같은 비인간적인 현상이 일어났는지 그 원인을 신중하게 진단하고 해결책을 내놓아야할 것이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는 어느 학생이 자신이 처하고 있는 상황을 설명하는 글에서 밝히고 있는 것은 학생들의 관계가 얼마나 비정상적이고 비인간적인지 알 수 있다. 그 학생은 자신이 전학을 와서 알고지내자고 다가온 소수학생과 관계를 가졌다는 사실만으로 나머지 학생들이 자신을 왕따의 대상으로 삼아버렸다고 고백하고 있다. 주류의 학생들이 일단 왕따의 대상으로 삼아버린 학생들은 어느 누구도 구원의 손을 미치기 어려운 소외의 구렁텅이로 빠져버리게 된다.
그렇다면 주류의 학생들은 소수의 학생들을 왕따의 희생양으로 만들려는 것일까. 일부 학생들이 학교 공동체에서 성적이나 능력에서 뛰어날 수 있고 못할 수 있다. 이때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기 위한 기회를 잡으려는 일진회 학생들이 뛰어난 학생이나 열등한 학생을 자신에게 복종하게 함으로써 리더로서 인정을 받으려는 소영웅주의를 발휘하게 된다.
일진회 학생들은 왕따의 희생양으로 만들려는 학생들을 가까이하거나 돕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을 철저히 공동체에서 따돌림을 당하게 만드는 것이다. 심지어는 사회의 악질 깡패들이 하는 행태와 조직으로 엄청난 돈을 축적하고 흥청망청 낭비하는 경우도 밝혀진 바 있다.
그렇다면 우정으로 약자를 도와주고 따뜻한 인간애를 보여주는 리더는 작금의 학교사회에서 알아주지 않는 것이 아닐까. 단지 명문대학에 들어가는 숫자만으로 교사의 능력을 평가하고 고등학교의 순위를 매기는 학교사회가 약자에 대한 배려를 얼마나 해왔는지 우리는 별로 들은 바 없다. 개인의 능력도 좋지만 학교나 학급 공동체가 사회를 아름답게 하고 따뜻하게 만드는데 기여하는 사례를 발굴하여 리더로 만들고 그들을 입시에서 높게 평가해준다면 촌음을 다투어 점수를 올리는데 혈안이 되어있는 분위기를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고 본다.
지난 1월 16일에 대전의 아파트에서 뛰어내린 여학생은 왕따로 자살한 친구를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으로 목숨을 끊는 경우이다. 지금 학교에는 왕따현상이 옳다고 보는 학생들은 없다. 하지만 전염병처럼 만연되어 있는 왕따의 고리를 선뜻 나서서 끊을 수 있는 용감한 학생이 존재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래서 희생양이 되어가는 친구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 못한 자신을 속으로만 자책하며 괴로워하고 심지어는 친구와 같이 죽음의 길을 따라가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폭력을 저지르고 있는 일진회 학생들과 가담학생들을 징계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그것은 이런 비인간적인 사회를 만든 성인들의 책임회피일 뿐이다. 이제 과감하게 사회의 정신적 환부를 도려내야 한다. 더 이상 학생들을 성적과 능력만으로 줄을 세우는 살인적 교육을 지속해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얼마나 수많은 아들 딸들이 죽음의 길로 달려가고 성인들은 뒤늦게 가슴을 치는 우매한 짓을 반복할지 모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