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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출 에세이=26] 설날의 추억

- 전래동요 속 설날은 기다림과 설렘이었다
김형출 기자 / mjmc00@hanmail.net입력 : 2012년 01월 17일
 
↑↑ 김형출 시인, 수필가
ⓒ (주)포천신문사 
까치 까치설날은 어저께고요 /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 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들이고 새로 사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설은 추석과 함께 우리의 최대 명절이다. 설의 진정한 의미는 조상숭배와 효 사상에 기반을 둔, 죽은 자와 산 자가 함께하는 뜻깊은 자리일 것이다. 현대사회의 설 풍경은 점점 변해가고 있지만, 그 전통은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설의 의미에는 설을 맞이하는 개인은 물론이거니와 가족, 나아가서는 국가에 이르기까지 공동체 속에서 살아간다는 동질성을 확인하고 결속을 다지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며칠만 지나면 우리의 설이 돌아온다. 올해는 평년보다 연휴가 짧은 관계로 귀향길이 혼잡하고 고생길이 예상된다. 게다가 침체한 경기로 즐거운 설 분위기만은 아닐 게다. 언제였든가, 귀향길에 차량 정체 때문에 승용차 안에서 잠을 설친 적이 있다. 고향에 도착하고 보니 다음날 오전 열 시 경이었다. 고향 가는 길이 꼬박 서른여섯 시간이나 걸린 셈이다.

그래도 고향을 행하고 있다는 설렘으로 고향길이 즐거울 수 있었다. 자식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시는, 하룻밤을 꼬박 뜬눈으로 지새우며 하루에도 몇 번씩 바깥마당을 서성댔을 우리 어무이! 그런 설날이 다시 올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꿈같은 이야기다.

개구쟁이인 나는 며칠 남지 않은 설날을 기다리다가 지쳐 몸을 뒤척거리면서 잠을 설쳐댔다. 장롱 속에는 설날에 입을 새 옷이 있었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도둑고양이처럼 장롱 속을 훔쳐보는 재미가 좋아서 죽을 지경이었다. 요즈음 아이들에게는 거짓말 같은 설 풍경일 게다.

그래도 당시는 집집이 살림살이는 넉넉하지 못했어도 설날에 먹고 즐길 음식만큼은 풍족하게 준비하였다. 그리고 이웃끼리 사이좋게 나누어 먹곤 하였다. 주로 쌀과 보리, 콩으로 만든 음식과 과자류였다. 가마솥에는 콩 삶는 냄새가 구수하게 흘러나오고, 마루에서는 쌀 과자를 만드는 어머니와 작은어머니의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당시는 지금처럼 욕실이나 목욕탕 등에서 목욕한다는 것은 꿈같은 얘기였다. 면 단위에도 공동 목욕탕이 없었다. 그믐날에는 가마솥이나 드럼통에 물을 데워 형제가 순서대로 번갈아 가면서 목욕을 하였다. 목욕 후에도 허옇게 불은 때를 가리키며 형제는 서로 흉을 보면서 깔깔대며 웃었다.

“발뒤꿈치 좀 봐! 까마귀 살이다.”
“저 손등 좀 봐! 썩 배기 돌이다.”
“시커먼 땟국 좀 봐!”

희미한 물빛 추억을 떠올리면서 낄낄거려 본다. 그믐날 자정이 되면 식구대로 촛불을 켜놓고 그 앞에 빙 둘러앉아서 자신의 촛불이 타오르는 것을 유심히 보면서 곁눈질로 아버지 얼굴을 훔쳐봤다. 아버지의 말 한마디에 희비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촛불이 유별하게 까불거리면 나쁜 징조라 하시면서 신년에는 특히 몸조심하라는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얌전하게 켜져 있는 형아 촛불을 쳐다보면서 빙그레 웃으시고 고개를 끄덕거리셨다. 그믐날 자정 전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말에 겁을 먹곤 허벅지를 꼬집어보기도 했었다.

ⓒ (주)포천신문사

드디어 설날 아침이 밝아왔다. 설날 아침에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찬물에 세수하고 장롱 안에 있던 새 옷을 꺼내 입고서는 거울 앞에 서서 한참 동안 나에게 옷 자랑도 하고 우쭐대기도 하였다. 작은집 식구들이 우르르 몰려오면 차례 지낼 준비를 한다. 어릴 적 아버지께서는 제사상 앞에서 무릎을 꿇고 축문을 낭독하셨다.

“유세차- 모월 모시 학생부군….”

나의 속마음은 차례보다는 문어 다리에 가 있었다. 이번 절이 마지막이라는 아버지 말씀이 떨어지기도 전에 나는 벌써 문어 다리를 낚아챘다. 차례가 모두 끝나면 아버지는 식구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음복 한 잔씩 명하셨다. 음복해야 만이 복도 들어오고 마음도 맑아지며 눈도 밝아진다고 하셨다.

이날만은 아이들에게도 음복 한 잔 정도는 모른 척 하는 것이 우리 집 풍습이었다. 공식적으로 일 년에 단 한 번 용돈 받은 날이 설날이었다. 세뱃돈은 단돈 10원짜리 몇 닢이었지만 용돈을 주신 아버지가 얼마나 고마웠던지 파랑새처럼 하늘 높이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요즈음 꼬마들에게 주는 세뱃돈은 최소한 푸른 배춧잎(만원) 정도는 되어야지 꼬마들 얼굴에 반응이 온다.

순박해야 할 동심에도 돈의 액수가 마음을 작동하는 물질만능주의 세상이 되다 보니 씁쓰레한 생각이 든다. 어제는 은행에 들러 아들, 조카들에게 줄 설날 세뱃돈을 오천 원짜리와 만 원짜리 신권으로 준비해 두었다.

차례가 끝나고 아버지와 작은아버지의 덕담이 있었다. 두 분의 덕담이 끝나면 준비한 설음식을 배불리 먹으면서 식구 간에 정담도 오간다. 그러다가 오후가 되면 객지에서 설 쇠러 온 손님들이 집으로 찾아와 아버지께 세배를 드렸다. 설날은 한 해 동안 있었던 속상했던 일을 접어두고 편안한 마음으로 마음껏 즐기는 날이었다.

아무튼, 설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즐거워야 한다. 설날에 가족과 함께하지 못하고 외롭게 지내는 어려운 이웃이 많다. 이들에게도 따뜻한 온정의 손길이 함께했으면 좋겠다. 사람 사는 정(情)이 수돗물처럼 콸콸 쏟아지는 설 명절이면 좋겠다.

김형출 / 시인, 수필가
김형출 기자 / mjmc00@hanmail.net입력 : 2012년 01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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