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원장님 안녕하세요? 한 번 만난 적도 없고 대화도 나눠본 적 없는 사람에게 이처럼 편지 형식의 글을 써보는 것은 난생 처음으로 하는 일이군요. 안 원장의 공식 직함은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지요? 세상 사람들이 다 안 원장, 안 원장 하니 저도 그렇게 부릅니다. 이런 편지를 써봐야 안 원장께 닿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 왜 이런 편지를 쓰는가? 마음 속 안타까움을 이렇게나마 해소해 보려는 의도임을 먼저 밝힙니다.
그 안타까움은 모든 정파를 초월하여, 그야말로 국민 멘토가 될 수 있는 분이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히는 결정을 하시려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에서 나옵니다.
요즘 이런 저런 보도를 보면 안 원장께서 정치 입문을 두고 고심 중인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이러한 때, 저는 안 원장께 지금 이대로 계셔달라는 말을 전하려 이런 두서없는 글을 쓰는 것입니다. 이대로 계셔 달라는 것은 지금처럼 IT 분야의 여러 솔루션을 개발한 첨단 학자로, 학문과 실천을 결합하여 세계적 연구소를 이끄는 연구관리자로, 기부재단을 만들어 사회의 약자들을 돕는 사회적 공헌자로, 객관적이고 공정한 안목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제안하는 국민적 멘토로 계셔달라는 말이지요.
물론 현실 정치의 장에 진입하여 안 원장께서 여태 쌓으신 경륜을 한 번 펼쳐 보고픈 욕망도 강할 것입니다. 다른 나라도 사정은 대개 그러하리라 짐작합니다만 특히 우리 사회는 모든 것이 정치로 귀일되는 사회라 할 만하지 않겠습니까? 경제도, 문화도, 사회의 여러 골치 아픈 문제들도 결국 정치로 귀결되다시피 합니다. 자기 지역, 심지어 자기 회사의 억울한 일도 대통령에게 호소하여 그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호소문을 종종 광고로 싣곤 하는 우리들의 풍속 아니겠습니까?
실제로도 지역과 사회의 여러 대소사들을 권력을 쥔 정치인들이 모두 총찰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그러니 여태까지 부동의 위상을 지녔던 박근혜 대세론을 뒤흔드는 안원장의 인기는 스스로에게도 놀라웠을 것이고 그래서 여러 가지로 마음 산란하실 것은 충분히 짐작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안 원장께서는 지금 이 자리를 지켜주실 수는 없을는지요? 이런 안타까움을 전하는 이유는 많습니다. 우선 권력이라는 것은 휘두를 때는 좋지만 권불십년이란 말이 있듯이 영원하지 못합니다. 권력의 정상이라 할 대통령직에도 임기가 있음은 물론이지만 그 직책을 수행한 여러 인물들이 결국은 좋은 뒤끝을 보지 못한 것이 우리들의 불행한 정치사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이명박 대통령은 벌써 레임덕에 절뚝이면서 온갖 비리/추문들로 인해 한 때의 화려하던 영예는 잠깐이고 온갖 굴욕을 감내하는 상황에 몰리고 있지 않습니까?
전.현직 대통령의 비운은 우리 정치와 사회의 어떤 특성 때문이라 치고, 그와 관계없는 미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퇴임 대통령은 현실 정치의 이면으로 조용히 사라져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차라리 빌게이츠나 워렌 버핏은 꾸준히 사람들의 주목과 사랑을 받지요. 그러니 지금 이 자리에 그냥 계신다면 우리 시정의 필부들이 시대와 사회의 올바른 지향을 구하고자 할 때 거기에 참조할 나침반으로서 얼마나 큰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동안 보여준 언행들을 보건대 안 원장은 이른바 여/야의 정파적 안목에 갇히지 않는 비교적 공평무사한 정견을 가지고 계신 듯합니다. 물론 한나라당과 현 정부를 시대에 역행하는 권력이라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지만 그동안 현실정치 판과는 거리가 멀었던 시민운동가인 박원순 변호사를 지지하여 그 분의 서울 시장당선에 일조하신 것을 보더라도 현재의 야당을 바로 지지하는 것도 아닌 듯싶습니다. 이러한 참신성과 순수성이 국민들의 높은 인기로 나타난 것이겠지만, 어쨌거나 바로 이러한 안 원장의 공정하고 온당한 비전이 정치가로서가 아니라 국민 멘토로서 계속 역할 해 줄 수 있기를 바라는 이유입니다.
안 원장의 이러한 역할은 모든 것을 정치로 귀일시켜 그에 따른 온갖 비리, 추문, 협잡을 일삼는 우리 사회의 부정적 관행 해소에도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한국 사회는 진정한 어른이 없다고도 합니다만 진정한 전문가도 없습니다. 자기 분야에서 어느 정도 성공했다 하면 모두 정치판으로 뛰어드는 탓입니다. 사회가 안정되고 구성원들이 마음으로부터의 행복을 누리는 사회는 자기가 맡은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기들의 소임을 아낌없이 다하고 사람들이 그를 인정하는, 직분의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사회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안 원장을 본받고자 과학자와 벤처를 꿈꾸던 젊음들이 혹 길을 잃을 것도 우려되는 대목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안 원장께서 내놓은 여러 저서 중에서 ‘영혼이 있는 승부’라는 책을 읽어 본 적이 있습니다. 주로 실무적인 내용들로 채워져 있었지만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을 일구려는 첨단산업의 CEO로서 안 원장이 편력한 여러 경험들이 감동적으로 서술된 대목들도 여럿 있더군요. 특히 미국에서 밤잠을 줄여가며 MBA 과정을 밟으면서도 매달 한 번씩 귀국하여 회사의 운영을 강철 같은 의지로 끌어간 이야기, 안철수 백신을 무료로 배포한 이야기, 안철수 연구소의 콘텐츠를 외국회사에서 사려고 했으나 한국 IT 산업의 발전을 위하여 막대한 이익을 고사한 이야기 등은 아무나 행할 수 없는 거인의 그것이라 여겼습니다.
이제 영혼을 담은 연구와 경영으로 우리 사회의 본보기가 된 안 원장께서는 정말 ‘영혼이 있는 승부’를 고심하셔야 할 지점에 선 듯합니다. 혼자만의 독백에 가까운 글이지만 안원장의 영혼이 우리를 계속 감동시켜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몇 자 적어보았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