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에서 매력(魅力)과 마력(魔力)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매력이란 무언가 마음에 끌리는 것이다. 마력 또한 어떤 힘에 끌리는 것이다. 그러나 둘 사이엔 차이가 있다. 매력은 자기 마음이 작용하는 것이다. 자기가 빠져드는 것이다. 마력은 그게 아니다. 마력은 빨려가는 것이다.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빨려드는 것이다. 이처럼 매력과 마력의 차이는 백짓장 차이이다. 그런데 그 백짓장 차이가 운명(運命)을 가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마력은 매력을 초월(超越) 한다. 마력은 매력을 뛰어 넘는다. 때로는 매력을 수반(隨伴) 한다. 마력을 포장(包裝)하기 위해서 매력을 동원하는 것이다. 마력은 팜 파탈(femme fatale)을 연상케 한다. 팜 파탈하면 떠오르는 것이 로렐라이 언덕의 요정(妖精)이다. 로렐라이 언덕의 어여쁜 요정은 애잔한 노랫가락으로 뱃사공들을 홀린 뒤 몽땅 강물 속에 밀어 넣는다. 청순한 매력의 팜 프라길(femme fragile)이 실은 요사스러운 마력의 팜 파탈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요정이 정치인(政治人)이고 뱃사공이 국민(國民)이라면 어찌 되겠는가? 끔찍하지 않은가? 노랫가락은 선동(煽動)이 되고 강물은 파국(破局)이 되고 말테니 말이다.
무상복지(無償福祉)는 매력적이다. 그러나 그 매력은 최근의 그리스와 이탈리아에서 보듯 이 재정파탄(財政破綻)을 부르는 부머랭(boomerang)으로 돌아오기 십상이다. 복지천국(福祉天國)이라는 스웨덴의 경우 세금과 사회보장기금을 합한 국민 부담률이 50%에 가까워 우리의 국민 부담률 26%보다 곱절이나 높다. 공짜 복지의 유토피아(utopia)는 없다는 뜻이다.
물론 복지는 시급히 확대(擴大)돼야 한다. 그렇기는 하나 그보다 먼저 공공부문에서 ‘국민부담의 증대’가 이루어지고 민간부분에서 ‘나눔의 확산’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부담 없이 복지만 외치는 교조적(敎條的) 슬로건(slogan)은 속임수에 불과하고 나눔 없이 시장경제(市場經濟)만 부르짖는 옹고집은 양극화해소(兩極化解消)와 사회통합(社會統合)에 걸림돌이 될 뿐이기 때문이다. 교조적 슬로건과 시장경제가 균형(均衡)과 조화(調和)를 이루어야 하는 이유이다.
천국(天國)은 그것을 이룩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완벽하게 만들어 갈수록 그것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숨 막히는 지옥(地獄)이 되어 버릴 수도 있다. ‘당신들의 천국’에 나오는 말이다. 천국의 매력에서 지옥의 마력을 보는 섬뜩한 통찰(洞察)이다. 이처럼 매력과 마력은 글자 한자의 차이이나 그 글자 한 획이 천사와 악마를,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천국과 지옥을 가를 수도 있다. 그 한 획의 차이를 간파(看破)하는 것이 이 혼돈(混沌)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智慧)가 아닌가 한다.
매력이란 말 속엔 유혹(誘惑)이라는 말이 숨어 있다. 유혹이라는 요소가 숨어 있다. 유혹에서 誘는 ‘말’의 뜻인 言과 ‘빼어나다’의 뜻인 秀의 합자다. 말을 빼어나게 하여 상대방을 속여 넘긴다는 데서 ‘꾀’라는 뜻을 나타낸다. 유혹은 ‘꾄다’는 것이다. 그럴듯한 말로 속여 넘기는 것이다.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속여 넘기는 것이다. 말재주가 교묘(巧妙)하고 표정을 보기 좋게 꾸미는 것을 교언영색이라 한다. 이 같은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
행간의 의미를 읽어야 하듯이 교언영색으로 포장된 말의 의미를 따져봐야 한다. 매력 뒤에 숨어 있는 마력의 의도(意圖)가 무엇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요즘 정치(政治) 한다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라. 얼마나 많은 그들이 복지를 말하는가? 얼마나 많은 그들이 나눔을 말하는가? 그런데 왜 울림이 없는가? 진정성(眞情性)이 없기 때문이다. 진정성을 따져야 한다. 마력에 끌리기 전에, 매력에 빠지기 전에, 그들의 진정성을 살펴야 한다. 그것이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요, 지성(知性)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