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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용 칼럼] 용서(龍西) 선생과 노고산(魯高山)


이희용 기자 / heeyeong1@hanmail.net입력 : 2011년 12월 29일
↑↑ 이희용 칼럼니스트, 포천신문 자문위원
ⓒ (주)포천신문사
용서 유기일(柳基一) 선생은 1845(헌종 11) 을사년 6월 3일생으로 포천 소흘면 고모리 향적산 아래에서 태어나셨고, 처음이름은 心永(심영)이었고, 字(자)는 성존(聖存)이며, 本貫(본관)은 文化(문화)이며 1904(광무 8)년에 세상을 떠나셨다.

선생의 初號(초호)는 용계(龍溪)였고, 후에 고쳐서 용서(龍西)라 하였으며, 중암 김평묵 선생을 따라 면암 최익현 선생과 더불어 화서 이항로 선생의 문하에서 배우셨고, 화서 선생이 돌아가신 후에는 중암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기도 하였다.

1876년(고종 13)에는 홍재구·유인석(柳麟錫)·윤정구(尹貞求) 등 화서학파 48인과 함께 개항에 반대하는 상소인 경기강원 양도유생 논양왜정적잉청절화소(京畿江原兩道儒生論洋倭情迹仍請絶和疏)를 올리는데 첫 번째로 이름을 올리며 위정척사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선생은 벼슬길에 나가지 않으시고 일생을 성리학을 연구하였고, 일제 침략으로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향적산(香積山) 아래에 은거하며 《척양록(斥洋錄)》 등의 저술활동과 문인을 양성하는 데 힘썼는데, 이때 원근각처에서 용서선생의 문하로 공부하러 온 문인이 수백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한편 선생의 아들 오형제와 손자들도 선생의 뜻을 이어 일제의 극심한 압박을 받으면서도 단발을 하지 않았고, 우리의 옛 풍습을 지켰으며 자손과 수백 명의 제자들도 그 분의 유업을 지키고자 했다. 그러나 용서선생이 남기신 저서를 발간하고자 하는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선생의 수제자이며 진심으로 기뻐하며 정성을 다하여 따른 문인은, 持齊(지제) 李哲榮(이철영)과 黃齊(황제) 羅相協(나상협) 이었는데, 持齊(지제)는 가세가 부유하여 선생의 의식주를 보조하였으며, 黃齊(황제)는 평생을 시골 훈장으로 곤궁한 생활을 하면서도, 용서선생의 글을 모은 용서고 114권을 필사 정리하여 보존하였으나, 한국 전쟁 때 폭격으로 소실되었고, 용서선생의 자택에 보존되어 있던 원본도 화재로 소실되었다고 한다.

이듬해 중암과 용서의 후학이신 지제 이철영 선생께서 소실되고 남은 책들과 먼저 빌려다 놓았던 책이 있었는데, 지제께서 돌아가신 후에 휴지로 매도한 것을 천우신조로 정신문화연구소에서 구입보존하게 되어, 이 중에 24권을 복사하여 정리해 놓은 책이 현재 전하고 있는 용서고라고 한다.

그렇게 전해지고 있는 용서고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재 소흘읍 고모리에 있는 노고산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향적산 아래에 있는 고묘앞 마을에 대한 포천시나 문화원의 자료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 나온다.

현재 지자체나 문화원에서 사용하고 있는 지명유래에는 “전설에 의하면 노고산이란 어떤 사람이 늙은 고모님(姑,할미)을 모시고 그 산 밑에 살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늙을 노(老)자와 고모 고(姑)자를 합친 것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전설의 내용대로라면 벌써 오래전에 백제시대 성으로 조사발표 되었고, 일부 학자는 고구려 고모루성이라 주장하고 있는 노고산이 한자로 老姑山(노고산)이라고 불려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용서 유기일 선생의 기록인 용서고(龍西槁)에는 갑오년 7월,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17년 전 기록에는 魯高山築堡時呈官文(노고산축보시정관문)과, 魯高山築堡時祭告土神文 (노고산축보시제고토신문)로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대로라면 적어도 용서선생이 태어나신 해인 1845년 지금부터 166년 전에는, 노고산의 한자 지명을 늙을 老(노)자와 시어미 姑(고)자가 아닌, 나라 또는 노둔함을 뜻하는 魯(노)자와 높을 高(고)자로 魯高山(노고산)이라 불렸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용서선생의 묘소가 있는 魯高山(노고산) 정상에서 시묘 중에 제자들의 문답을 기록한 노고어록(魯高語錄)에도 동일한 기록이 전해진다.

그러니 고모리에 있는 노고산에 대한 지명유래도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고, 특별히 이 지역은 화서학파의 성지라 불릴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음을 깨달아, 새로운 상징물을 만드는 것보다는, 중암 김평묵 선생과 면암 최익현 선생 그리고 용서 유기일 선생을 기념하는 정신적인 성지로 만들어서 시민의 자부심을 이끌어 낼만한 문화적 행위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본다.

비근한 예로 인근춘천에서는 의암 유인석 선생을 연구하고 선양하는 일에 몰두하여, 벌써 오래전부터 댐의 이름도 의암댐이라 명명하면서 그 분의 업적을 기리고 있는데, 의암보다 더 훌륭하신 중암, 면암, 용서, 이 세분의 선비가 우리의 조상이고 이 지역 출신인데, 과연 후손인 우리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볼 일이다.

이희용 /
제3대 포천시예총 회장, 광릉숲 시인, 연극인, 칼럼니스트, 한국스카우트 경기북부연맹 감사, 포천시 수능시험장 유치추진위원장, 전 경기도예총부회장, 포천시지역사회복지협의체 초대위원장, 포천신문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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