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기 때 우리 어머니 하시는 말씀이 ‘너는 길신(길 귀신)이 쓰였나보다’라고 할 정도로 어디고 다니는 것을 좋아 했다. 17세 때는 무전(無錢)여행을 열흘 동안 하면서 충주 근방까지 다녀온 적도 있어 온 집안 뒤집어 놓은 전력도 있다. 또 새로운 물건이 나오면 구입을 해서 만져보고 뜯어보는 습성이 있어서 부모님 마음도 많이 상하게 해드리기도 했지만 오늘의 내가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나이에 비해 조금은 잘 다루는 것은 어린 시절의 끼가 있어서 아닌가 싶다.
장가도 일찍 가고 아들딸도 일찍 낳아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이 되어 철이 일찍 들어 자립도 빨리 한 것 같다. 4남매 자식도 다 대학.대학원에서 석.박사 받아 좋은 직장에 취업하다보니 또한 사위 며느리도 석.박사가 되어 우리 집에는 석.박사가 8명이나 된다. 자녀들 결혼 다 시켰고 손자손녀가 9명이나 되는 대가족을 이루고 가정에서 금전문제나 자식문제로 걱정거리가 없으니 여행으로 인생의 희비와 고락을 체득하면서 삶의 지혜를 배우려 한다.
나는 늘 엉뚱한 생각을 잘한다. 옛 선비들은 과거시험 보려고 남도에서 한양까지 걸어 왔을까. 또 6.25때 피난민들이 걸어서 따뜻한 남쪽으로 피난길을 걸었던 일을 생각을 하였고 나또한 그길 국도 1번 국도를 따라 (삼도길) 걸어 보고픈 마음에 삼도길 여행계획을 부인 박 권사에게 이야기 했더니 아주 좋다고 하며 나도 한번 실컷 걸어봤으면 좋겠다고 하여 우리부부는 그때부터 준비 아닌 준비를 하게 되었다.
몸도 마음도 가정 살림살이도 여행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했다. 출발점은 한반도의 중심 영중면 38도선에서 출발하여 해남 땅끝까지 가보면 어떨까 참 재미있고 좋은 여행이 될 것 같았다. 세계 45개국 여행을 했고 차량으로는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여행했지만 내륙 1번국도 를 이용하여 걸어서 각 시군을 지나며 많은 사람을 만나며 풍물을 보는 여행은 처음이었다. 미지(未知)의 길이고 걷는 여행이라 두려움도 있었지만 걸으면서 몸도 만들고 보행 길도 개척해보자는 마음으로 도전하게 되었다.
드디어 출발 날짜를 잡으니 웬 할 일이 그리 많은지 5월은 각종 곡식의 파종기라 바쁘고 바쁘다. 고추. 콩. 참깨. 감자. 상추. 각 가지 야채를 다른 해보다 조금 일찍 심었다. 주위 사람들이 왜 채소류를 빨리 심느냐고 한다.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본다. 약 한 달간 집을 비울 생각을 하니 챙겨볼 곳도 많다. 여행을 떠날 땐 모든 일을 잊어야 홀가분하게 갈수가 있다.
금번 여행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기록을 내는 경주도 아니며 누가 알아주는 여행도 아니며 전시효과를 내려는 여행도 아니었다. 내가 몇 년 전부터 계획했던 여행 걷는 것이 좋아서 고행(苦行)의 여행을 결심하게 되었으니. 행동으로 실천만 하면 된다. 우리부부는 동갑으로 48년생이다. 내 몸무게가 85킬로이고 박 권사(부인) 한국 여인의 표준은 조금 넘는 듯하여 걷는데는 약간 무리가 될 것 같지만 걷다보면 몸 상태가 좋아질 것이고 많은 사물을 보고 사람을 만나면서 삶의 지혜를 얻을 것을 확신하였다.
이 땅의 모든 사물은 처음부터 있던 것이 아니고 세월이 가면서 사람의 편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많지 않는가. 지금의 내 배는 약간 나왔지만 38도선에서 해남 땅끝까지 걷다보면 배는 들어가고 다리 종아리는 탄탄해지고 얼굴은 구릿빛이 될 것을 생각하며 걷다가 힘들면 자고가고 쉬어가면서 지나가는 지방마다 특색 있는 음식을 맛보면서 우리 부부는 마냥 즐거운 마음으로 여유 있게 여행을 했다.
여행은 인생사다. 걷다보면 오르막길도 있어 힘들 때도 있었고 내리막길이 있어 쉽게 걸을 때도 있었고 터널을 지날 때는 숨이 멈출 정도의 악조건도 있었으며 비가 오는 날 걷다보면 지나가는 차량이 물탕을 튀겨 봉변을 당하기도 하여 큰 소리로 욕도 해보았고 친절한 사람을 만나 여행에 보람도 느껴보았고. 무슨 사연이 있어 그 머나먼 길 을 걷느냐고 물음도 받았고. 부인 고생시킨다고 남편 얼굴을 확 긁어버리라는 노파의 말도 들었으며.
황사 봄바람으로 마스크를 써야만 했던 날. 구름이 양산이 되어 걷기 좋은날. 햇빛이 유난히 내려쬐여 숨을 헐떡거리던 날. 가로수가 있어 걷기 좋은 시원한길. 아스팔트길. 시멘트길. 비포장 농로길을 우리 부부는 아주 많은 대화를 하면서 서로간 배려와 존중과 격려를 하며 화기애애(和氣愛愛) 하며 20일 동안 해남 땅끝 마을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금번 여행을 통해 아주 많은 이야기 거리를 가지게 되었고 몸무게도 5킬로나 줄었으며 내 다리 종아리는 씨름선수 종아리는 못되지만 흉내는 낼 정도며 책 몇 권 탐독한 불량의 지혜를 몸소 체험을 통해 배우게 되었으니 내생의 전성기 같다. 내년엔 임진각에서 고성 통일 전망대까지 걸을 계획이다. 남북관계가 좋아져 금강산까지 걸어 갈수 있다면 내생의 최고의 2012년이 아닐까 한다.<끝>
양주승 / 포천신문 자문위원회 고문, 포천신문 사진동호회 회장, 포천시법원 민사조정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