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아탑(象牙塔)과 우골탑(牛骨塔)이란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 말은 모두 대학을 비유한 것이다. 대학을 상아탑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상향(理想鄕)을 지향하기 때문이고 우골탑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소 팔아 대학을 보낸다는 속설(俗說)에 기인한 때문이다. 이상향이란 속세(俗世)를 떠나 오로지 학문이나 예술에만 잠기는 경지(境地)를 말하는 것이다. 현실 도피적이고 관념적(觀念的)인 연구생활에만 집착(執着)하는 학자들의 생활을 일컬어 그리 말하는 것이다. 이처럼 대학을 학문과 진리를 탐구하는 신성(神聖)한 곳이라는 의미에서 상아탑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상아탑과 같이 대학을 비유하는 말이 또한 우골탑이다. 상아탑이 학문의 신성함을 존중한 말이라면 우골탑은 대학을 빈정대어 이르는 말이다. 가난한 농가에서 소[牛骨]를 팔아 마련한 학생의 등록금으로 세운 건물[塔]이라는 뜻에서 그리 말하는 것이다. 지금은 세월이 많이 달라져 우골탑이란 말이 생소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6.25 전쟁 이후 가난했던 시절엔 밭가는 황소가 농가(農家) 재산의 전부였다. 전 재산을 팔아 대학을 보냈으니 당사자의 심정이 오죽했으랴.
말 할 것도 없이 대학은 신성한 곳이다. 학문을 익히고 진리를 탐구(探究)하는 곳이다. 한마디로 말해 와이(why)와 하우 투(how to)를 가르치는 곳이다. 왜 그러냐를 가르치는 곳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냐를 가르치는 곳이다. 이 둘의 가르침이 균형(均衡)과 조화(調和)를 이룰 때 그 사회는 발전하고 융성(隆盛)한다. 그런데 요즘 우리 대학이 그렇지 않은 것 같아 걱정이다. 와이보다 하우 투에 올인(all in)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疑懼心)이 들어 하는 말이다. 대학가에 스펙이라는 말이 유행해서 하는 말이다.
스펙이란 상품의 사양(仕樣)을 말하는 것이다. 상품의 사양(仕樣)이라는 의미를 지닌 이 스펙이라는 단어가 사람의 능력을 표상(表象)하는 단어가 된지 이미 오래다. 물론 스펙도 중요하고 취업(就業)도 중요하다. 그러나 스펙만 쌓아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하우 투만을 쫓아서는 멀리 갈 수 없고 앞서 갈 수 없다. 기본에 충실해야 하고 와이에 충실해야 한다. 한 마리 물고기 보다 물고기를 낚는 방법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대학만 탓할 일이 아니다. 사회도 문제다. 스펙 사회의 원인은 기본적으로 교육의 문제가 아닌 사회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회가 인재를 평가할 때 그의 창의성(創意性)과 능력(能力)을 온전히 평가하지 않고 단지 규정된 틀에 얼마나 충실했는가를 따지는 획일적(劃一的) 선발 기준을 가지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이를 태면 사양으로 비교되는 컴퓨터처럼 사람의 능력을 학벌로 서열화(序列化)해 평가하는 틀을 세운 탓에 그리 된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는 뒤따라가기만 하는 나라가 아니다. 모방(模倣)에 머무는 나라가 아니다. 세계를 선도하는 리더그룹(leader group)에 속해 있는 나라다. 흉내 내려도 흉내 낼 수 있는 대상이 없고 모방하려도 모방 할 수 있는 대상이 없어져 버렸다. 어찌 해야 하는가? 우리 스스로 개척하고 우리 스스로 무언가를 창출(創出)해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하우 투만 쫓아서 되는 것이 아니다. 와이에 골몰해야 한다. 왜 그러냐를 따지고 왜 그렇게 해야 되느냐를 물어야 한다. 스펙 쌓기에만 열중해서 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학이 우골탑에 머무르게 해서는 안 된다. 진정으로 상아탑이 되어야 한다. 우리 대학을 세계 각국에서 유학생이 몰려오는 이상향으로 만들어야 한다. 하우 투를 뛰어넘어 와이를 선도해나갈 수 있는 대학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한류(韓流)나 K팝이 그냥 된 것이 아니다. 기본에 충실(充實)했고 각고(刻苦)의 노력을 기울였기에 그리 된 것이다. 그 정신을 본받고 이어가야 한다. 당장 눈앞의 이익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먼 미래를 내다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