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건과 궁예를 모르는 포천사람은 없을 것이다.
신라 헌안왕의 아들 궁예는 죽을 고비를 시녀의 기지(자기 아들과 왕자를 바꿔 살려 양육함)로 살려 키웠던 왕가의 후손으로 후고구려라는 기치를 높이 들고 한반도의 주인이 되려고 후삼국 중 최강의 맹주로 군림하다가 왕의 자리를 충신 왕건에게 내어 주어야 하는 비운을 맞게 되는데 폭군이자 오만 불손하고 백성 무서운 줄 모드던 가짜 땡초 중의 몸으로 왕건과 최후의 싸움을 벌인 전장(戰場)이 바로 내 고향 포천의 북쪽이었다.
궁예는 명성산(鳴城山)에서 왕건의 공격을 받아 패하여 울음소리 크기도 하였는데 산 이름이 명(鳴:울 명) 성(城:재 성) 산(山:뫼 산)이 되었다. ‘항서받골’ 골짜기는 왕건이 궁예에게 항복문서를 받던 골짝이고 ‘망봉’은 궁예의 초병이 망을 보던 봉우리이며 망봉은 산정호수 양편에 있다. ‘여우고개’는 이동면 장암리로 넘는 고개인데 여우가 자주 나타나 지나는 사람을 홀리기도 하였지만 궁예군사와 왕건군사가 서로 눈치를 여우처럼 엿보던 고개였다고 전한다.
관인면 중리에는 ‘대궐터’라는 지명이 있는데 이곳은 태봉국 궁예가 머물렀던 곳이라고 하며 ‘보가산성’은 보개산성이라고도 하는데 궁예왕의 대각대성지(大覺大省地)로 왕건에게 쫓겨 와 크게 뉘우치고 깨달았던 곳이라 전한다.
아름다운 산정호수에 명성산 그림자가 드리우면 그 물그림자가 이곳을 찾는 관광객의 가슴을 설레이게 한다.
궁예도 이곳 산에서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명성산이나 망봉을 이용했을 것이나 패주(敗主)가 아닌 존경받는 군주로 만조백관을 거느리고 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으리라.
반대로 성군 왕건(聖君 王建)은 승리의 군주로 패주 왕인 태봉에게 항복을 받고 승리의 칼을 씻은 뜻깊은 곳이기도 하다. ‘패주골(일명 파주골)’은 태봉이 패하고 도망간 ‘패주(敗主)’골짜기 인데, 지금은 순두부가 맛자랑을 하는 명소가 되었다.
태봉의 도망간 발자국이 어딘가 남아 있으리라. 북한의 김일성이 이곳 산정호수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낚시도 즐길 겸 자주 이곳을 방문하였던 명소라고 하여 유명하다.
6.25 전에는 이곳 산정호수 호반에 ‘김일성 별장’ 터에는 ‘통일유적지’를 조성 한다던가 보개산성이나 명성산 등반대회를 통해 후삼국 격전장의 의의를 되살림도 관광상품으로 어떨까?
‘왕건배 국궁대회’는 어떨까? 다 같이 생각해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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