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사회는 ‘인종의 용광로’라고 불릴 정도로 지구상의 모든 인종이 모여 산다. 물론 주류는 백인들이다. 미국의 백인들은 노예로 이용하기 위해서 이주시킨 흑인들 뿐 아니라 아시아계 황인종까지도 모두 백인 문화에 동화시키려는 정책을 써왔다. 그러나 고유의 문화를 향유했던 소수인종들이 획일화된다는 것은 어렵다는 것과 그들의 저항을 유발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오히려 그들의 고유한 문화가 공존하는 다양성을 보장하는 것이 소수인종으로 하여금 미국사회를 사랑하게 한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한국사회도 미국사회가 겪었던 비슷한 과정을 겪어나가고 있다. 소위 3D직종을 비롯해서 대부분의 생산현장은 제3세계 출신의 노동자들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다. 농촌에서는 동남아 며느리가 늙은 시부모를 모시며 살아가는 모습이 티브이 화면에 종종 발견된다. 단순히 한국사회에 부족한 인적 자원을 채우는 대체물로서 생각하던 시절은 지났으며 그들을 당당한 한국인으로서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다문화 사회에 들어선 것이다.
사실 타 인종도 한 공동체에서 산다면 당연히 적법한 국민의 일원으로 받아들여함에도 불구하고 주류와 피부 색깔이 다르다는 이유로 마음의 문이 쉽게 열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가는 국경 안에 살아가는 주민들에게 국민이라는 타이틀을 주면서 그것이 추구하는 이데올로기의 옷을 입도록 유도한다.
국민이 되면 국가가 요구하는 세금을 내야하고 국방의 의무를 비롯한 여러 가지 책임과 의무를 지게 한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전에는 민족이나 국민국가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으나 청일전쟁을 즈음하여 국민이라는 미명하에 그들로 하여금 전쟁에 참여하게 하기위해 국민이란 정치적인 용어를 만들었다. 국가를 위해서 무조건적으로 희생해야하는 국민이라는 괴물이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한국도 일본 식민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저항적 민족주의를 내세웠으나 해방 후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은 국민들에게 독립이나 해방의 긍정적 효과를 보여주기 보다는 억압과 종속을 강요함으로써 국민국가의 또 다른 악순환을 보여주었다. 결국 국민국가의 부정적인 요소는 다른 민족이나 국가 간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같은 민족인 한 국가 안에서도 발생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례이다.
미시카와 나가오는 『국민이라는 괴물』이란 책에서 “역사는 저항적 민족주의가 지배적․정복적 민주주의로 변질되는 사례를 제공한다. 글로벌화라는 새로운 형태의 식민주의 아래에서 민족과 국민국가가 부활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국가 간의 스포츠 경기나 문화에 대해서 측정할 수 없을 정도의 애정을 가지는데, 그것을 ‘조국애’란 수사를 이용한다. 2차대전 동안 히틀러나 무솔리니, 그리고 일본천황은 조국애라는 허위적 감정을 국민들에게 주입한 후 국민들로 하여금 제국주의의 희생물이 되도록 강요한 바 있다. 이것이 국민국가의 위험한 관념이라는 것이다.
국가는 국민으로 의식화시키는데 국민문화와 국민문학을 효과적인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국가나 국민을 나타내는 공통분모로서 국어나 국민문화나 국민문학을 들 수 있다. 국민의식이나 조국애를 함양시키는 도구로서 국어나 국민문화나 국민문학이 사용되기도 한다. 일제시대에 영향력 있는 문인들이 국민들로 하여금 일본이라는 국민국가를 위해서 병사로, 또는 징용으로 충성을 하라고 회유한 바 있었다. 참으로 일제를 합리화시키는 국민문학의 수치스러운 경우이다.
그러나 언어란 많은 언어들이 영향을 주고 서로 수용함으로써 변화하고 발전하며 국어란 국민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인위적 가공일 수 있다. 지배적 민주주의에서는 국민문화나 국민문학은 국민들을 전쟁인 국가의 이익을 위해 동원하는데 이용되는 픽션일 뿐이다.
요즘 현대 사회는 다언어주의나 다문화주의가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단일 언어나 국민문학은 다양성을 지향하는 국민에게는 정신적 폭력인 억압이 될 수 있다. 엄격한 국경주의나 인종주의를 내세우는 국가일수록 다문화 사회가 지녀야할 다양성이나 포용성을 가지지 못한다. 그래서 다문화․다언어를 주장하거나 비판하는 양쪽이 모두 민족공동체와 언어공동체, 그리고 문화공동체가 동일하다는 공통의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것은 양자 모두 국민국가의 시대에 형성된 낡은 개념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들이 다국적 회사를 가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회사에 필요한 인적 자원들이 국민이라는 카테고리에 묶어둘 수 없는 상황이다. 진정한 글로벌 사회로 접어드는 한국은 폐쇄적 국민 국가의 개념을 넘어서서 좀 더 열린 자세를 취함으로써 진정한 다문화사회를 이루어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