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명(陋名)이나 오명(汚名)이란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더럽다’는 의미(意味)를 가진 뜻글자에 누(陋)와 오(汚)가 있다. 이 두 글자에 공통적으로 명(名)을 붙이면 누명(陋名)과 오명(汚名)이라는 단어가 된다. 두 단어를 글자대로 풀이하면 ‘더러운 이름’이다. 언뜻 보면 이 두 단어의 뜻이 같아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그 둘 사이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오명은 확실하게 어떤 잘못을 저질러 이름이나 명예(名譽)를 더럽힌 것으로 장차 그 더럽혀진 이름이나 명예를 벗을 여지가 없음을 말한다. 이에 비해 누명은 어떤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억울하게 이름이나 명예를 더럽힌 것으로 장차 그 억울한 평판(評判)을 벗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말한다. 오명은 자신의 언행(言行)에서 발원(發源)하는 것이다. 시작되는 것이다. 자신의 의지(意志)가 작용한 것이다.
자신이 어떤 일에 관여(關與)하고 참여(參與)함으로써 생겨나는 것이다. 평소에 말을 삼가하고 행동을 삼가 하면 피할 수 있는 것이고 멀리 할 수 있는 것이다. 근신(謹愼)하고 삼가 하면 근절(根絶)할 수 있는 것이다. 언행을 삼가하고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하는 이유이다. 오명은 당장에 나타나는 것이고 직접 다가오는 것이다. 명백히 잘못한 것임으로 아니라고 부인(否認)할 수도 없고 회피(回避)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고쳐질 수도 없는 것이다.
회복될 수도 없는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고관대작(高官大爵)을 지낸 사람도 후일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비켜가지 못하는 것이다. 누명은 처신(處身)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자신의 의지가 작용한 것은 아니나 그 순간 자신이 어디에 머무르고 있었느냐에 따라 속박(束縛)당하는 것이다.
자신이 그러한 뜻을 가지고 그 자리에 간 것은 아니나 정황(情況)이 그러하면 매도(賣渡)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옛 분들이 오얏나무 아래에선 갓끈을 매지 말고 참외밭 근처에선 신발 끈을 매지 말라고 한 것이다. 아무리 그러할 의사가 없었다 하더라도 정황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오얏을 따거나 참외를 딸 생각이 아니라면 갓끈과 신발끈을 졸라맬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처신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이다.
물론 누명을 쓰는 것은 억울한 일이다.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다. 그러나 낙심할 일만은 아니다. 오명과 달리 언젠가는 사실이 밝혀져 누명을 벗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평소에 처신을 잘 해야 한다. 자신이 직접 관여하거나 참여하지는 않았더라도 원인제공(原因提供)을 했을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처신이 원인(遠因)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사(禪師)들이 유전연기(遺傳緣起)에서 환멸연기(幻滅緣起)로 넘어가고자 평생을 참선(參禪)에 매달리는 것이다. 모든 인연(因緣)을 끊고 산사(山寺)로 향하는 것이다.
환멸연기란 나 자신의 근원(根源)을 없애는 것이다. 나 자신이 없다면 상대와 관계(關係)지어질 일도 없고 잘못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내가 있음으로서 상대가 있는 것이고 내가 있음으로서 상대와 나와의 관계가 설정(設定)되는 것이다. 모든 원인은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내가 근신하면 누명을 쓸 일도 오명을 들을 이유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자성(自省)하고 자성해야 한다. 남을 탓할 것이 아니라 내면(內面)의 세계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자신을 지키는 길이 거기에 있고 행복을 추구(追求)하는 길이 거기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남의 탓을 버리고 분심(忿心)을 다스려야 한다. 누명을 쓸 일도 하지 말고 오명을 남길 일도 하지 말아야 한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만을 쫓다 후대에 더러운 오명을 남기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 부관참시 당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