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거기에 내 스승이 있다(三人行必有我師焉)는 말이 있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나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좋은 것은 본받고 나쁜 것은 경계(警戒)하라는 말이다. 이와 관련된 단어가 귀감(龜鑑)과 타산지석(他山之石)이다. 귀감은 거울로 삼아 본받을 만하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좋은 면만을 본보기로 삼으라는 것이다. 모범(模範)을 보이라는 것이다. 선망(羨望)의 대상이 되라는 것이다.
타산지석은 그게 아니다. 다른 산에서 나는 거칠고 나쁜 돌이나 그것을 숫돌로 쓰면 자기의 옥을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하찮은 언행(言行)도 자기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화(消化)하느냐에 따라 득(得)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건성으로 보지 말고 경각심(警覺心)을 가지라는 것이다. 간혹 이 둘을 혼동해 ‘귀감으로 삼아야’ 라고 할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라고 잘못 쓰는 경우가 있다.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할 일이다.
타산지석이란 여행을 전제(前提)로 하는 것이다. 개방(開放)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고립(孤立)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쇄국(鎖國)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문밖을 나가 봐야 하는 것이고 다른 나라를 가봐야 하는 것이다. 남이 무엇을 하고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살펴야 하는 것이다. 남의 산에 돌을 봐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내산이 어떻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빗장을 걸어닫기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빗장을 확 열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지구촌(global village)을 말하고 세계화를 말하는 오늘날엔 더욱 그러하다.
지난 역사를 봐도 개방했을 때는 번창(繁昌)했고 쇄국했을 때는 쇠락(衰落)했다. 나라는 기울었고 백성은 도탄(塗炭)에 빠졌다. 외침을 당했고 국권을 찬탈(簒奪)당했다. 개방해야 함은 물론 적극적으로 외국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 외국의 제도[system]를 받아들여 내것으로 승화(昇華)시켜야 한다. 그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출(創出)해내야 한다. 따라가기만 해서도 안 되고 베끼기만 해서도 안 된다. 그것을 뛰어넘어 새로운 패러다임(paradigm)을 만들어내고 새로운 길을 개척(開拓)해 나가야 한다.
향곡지사(鄕谷之士)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정저지와(井底之蛙)로 머물러서도 안 된다. 고을을 떠나 넓은 세상을 두루 다녀봐야 한다. 우물을 뛰쳐나와 새로운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그들과 부디켜보고 경쟁(競爭)해봐야 한다. 팔씨름도 해보고 줄다리기도 해봐야 한다.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아는 것이다. 해보지도 않고 아는 척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해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체험(體驗)해봐야 터득하게 되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타산지석의 지혜(智慧)는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귀감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노고(勞苦)를 치러야 하는 것이고 생사(生死)를 넘나들어야 하는 것이다. 전쟁터도 누벼야 하는 것이고 모험도 불사(不辭)해야 하는 것이다. 테스트 파이럿트(test pilot)가 중요한 이유이고 임상 피험자(被驗者)가 중요한 이유이다.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그 일을 한다. 위험한줄 알면서도 그 일에 임한다. 생명을 담보(擔保)하는 것이다. 얼마나 숙연(肅然)한 일인가? 얼마나 경건(敬虔한 일인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비판(批判) 하지 말고 이해(理解)하려 노력해야 한다. 자만(自慢)하지 말고 늘 새로운 것을 추구(追究)해야 한다. 혁신(革新)하고 또 혁신해야 한다. 현재에 안주(安住)해서는 안 된다. 현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미래에 대비하고 위험에 대처해야 한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정신으로 임해야 하고 임전무퇴(臨戰無退)의 자세로 무장해야 한다. 타산지석을 거울삼고 귀감을 본으로 삼아야 한다. 선진부국(先進富國)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새겨들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