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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출 에세이=19] 진정한 자유는 구속된 자유이다

- 동물도 자유를 안다
김형출 기자 / mjmc00@hanmail.net입력 : 2011년 10월 26일
 
↑↑ 김형출 시인, 수필가
ⓒ (주)포천신문사 
눈을 의심하면서 다시 뒤돌아보아도 그물로 엮인 닭장 안에는 토끼 네 마리, 닭 네 마리가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다. 토끼와 닭은 예로부터 사람과 친숙한 동물이라 낯설지가 않다. 꼬리가 긴 수탉은 붉은 귀 뿔을 덜렁대며 나를 쳐다보는 것이 아주 당당하다. 깃털에 윤기가 번지르르한 수탉은 암탉을 보호하면서 연방 모이를 쪼아대고 있는 것이다. 통통하게 살진 친칠라토끼 녀석들은 싱싱한 배춧잎을 명시로 살핀 후 짧은 앞발로 낚아챈 다음, 인형 같은 입으로 오물오물 잘도 뜯어 먹고 있다.

토끼는 꾀가 많고 순결함과 평화로움을 지닌 성장과 풍요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그래서 우리 조상은 토끼를 이상향에 사는 동물로 바라보기도 했다. 휘영청 밝은 보름달 안에 계수나무 옆에는 떡방아를 찧고 있는 토끼가 보인다. 닭은 부지런하고 용맹하며 길조를 주는 동물이다. 그래서 옛날 혼례식을 마친 신랑 신부는 ‘장탉’ 앞에서 백년해로를 맹세하기도 하였다.

궁금한 것은 가두어진 닭장 안에 이놈들이 서로 싸우지도 않고 사이좋게 잘 지낸다는 것이다. 닭장 안으로 들어섰을 때, 닭들은 눈알을 부릅뜨고 나를 잔뜩 경계하는 눈치였고, 토끼 녀석은 한쪽 귀만 쫑긋 세우고 놀란 듯 후다닥! 굴속으로 쏘옥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놈들도 사람처럼 낯가림하며 겁 잔뜩 먹고 잔뜩 움츠리는 것이다. 다시 닭장을 나와 한참 동안 녀석들 움직임을 숨죽이며 살펴보았다. “토끼와 닭이 싸우지도 않고 아주 잘 지낸단 말이야!” “사람들보다 낫잖아!”

잠시 후 토끼 두 마리가 나의 눈치를 살피더니 내가 던져놓은 배춧잎이 있는 곳으로 어슬렁대며 다가왔다. 닭들도 ‘구구’ 대며 배춧잎 쪽으로 모여들었다. 토끼는 배춧잎을 오물오물 뜯어먹고 닭은 배춧잎을 콕콕 쪼아 먹는다. 이번에는 물그릇에 물을 부어주었다. 닭들은 물 한 모금 마시고 하늘 한번 쳐다보고 다시 물 한 모금 마시고 나를 쳐다보는 것을 반복한다.

물 먹는 것이 독특하고 귀엽다. 그런데 토끼 녀석은 물그릇에 입만 살짝 대고서는 슬그머니 옆으로 꽁무니를 빼는 것이다. 토끼 녀석은 물을 먹지 않아도 목마르지도 않나 봐,
개구쟁이 시절 뒤주 바로 옆 합판에 철사로 엮은 낡은 토끼장이 하나 있었다. 토끼장 안에는 닭장 안에 있는 같은 종류인 친칠라 두 마리였다.

씀바귀, 토끼풀, 칡 이파리 등 토끼풀을 토끼장 안에 넣어주면 토끼들은 풀잎을 오물오물 잘도 받아먹곤 했다. 별도의 닭장이 없이 닭 열댓 마리를 키웠는데 이놈들은 마루, 부엌, 마당 등 안 돌아다니는 곳이 없이 나부댔다. 그래도 암탉이 알을 낳으면 어머니는 밀가루와 잘 섞어 만든 계란찜을 찬으로 만들어 주셨고 계란을 삶아도 주셨다. 계란 맛이 얼마나 맛있었던지 그때의 추억을 생각하면 입안에 군침이 돈다.

햇볕이 잘 드는 마당 모퉁이에 귀여운 병아리 떼가 “삐악! 삐악!” 옹기종이 모여 있고, 날렵한 참새들이 우르르 내려앉으면 짓궂은 개구쟁이는 참새를 잡을 요령으로 고무총을 쏘기도 하며 달리다가 돌부리에 넘어지기도 하였다.

시월 어느 토요일, 묘사를 지내러 다시 고향을 찾았을 때 가장 먼저 살펴본 것이 닭장이었다. 이놈들이 사이좋게 잘 지내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이놈들은 여전히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었다. 닭들은 사료를 쪼아 먹고 토끼들은 서리 맞은 호박을 오물오물 갉아 먹고 있었다. 한번 보고 두 번 보고 다시 또 보니 녀석들에게 정이 많이 들었다. 서로 못마땅해서 으르렁대며 질투하고 헐뜯고 싸우는 못난 인간들보다 낫다. 동물들이 사람들보다 천 배나 낫다는 생각에 빙그레 미소를 지어본다.

차가운 밤하늘에 떠있는 보름달은 휘영청 밝다. 고향의 초겨울 밤은 너무나 조용하고 평온해서 어둠이 시려 오기까지 한다. 닭장 안에 토끼 한 마리가 굴속에서 뛰쳐나와 보름달을 구경하고 있다. 어둑어둑한 어둠을 가르는 우렁찬 수탉의 울음소리에 단잠을 깼다. 꼬끼오! 꼬끼오! 꼬꼬, 꼬끼오! 꼬끼오 꼬꼬. 닭장 안 모퉁이에는 별난 상자 하나가 더 있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토끼 한 마리가 들어 있다. 비좁은 상자 안에 들어 있는 토끼는 놀라지도 않고 가만히 움츠리고 있었는데 하나의 궁금증이 생겨났다.

“왜 토끼 한 마리는 풀어놓지 않고 가두어 놓았을까?” “혹시 병이 걸렸나?” 아니면
“새끼를 배어 격리시켰나?”
전번에는 형님께 여쭤보지 못했었는데 이번에는 미리 여쭤볼 요량이다. 형님 이야기는 별도로 가두어 놓은 토끼는 집을 세 번씩이나 뛰쳐나갔었던 가출 경험이 있는 놈인데 보름이 지나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아 세 번 다 동네 주민이 발견하여 잡아왔다면서 죄질이 몹시 나쁜 놈이라 놓아 키울 수는 없단다.

“형님, 저 토끼 녀석 불쌍한데 이젠 연금을 풀어주면 안 되나요?”
상자 안에 별도로 가두어놓은 토끼는 상자 밖으로 탈출하고 싶을 것이다. 나는 지금, 그물로 엮어진 닭장을 바라보면서 자유와 구속된 자유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들도 닭장 안에, 또 그 안에 가두어진 이놈처럼 구속된 자유의 틀 안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진정한 자유란 베트남의 승려 ‘틱낫한’의 “감옥 밖에 있어도 구속된 존재일 수가 있고 감옥 안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라는 이 말을 곱씹어본다.

김형출 / 시인, 수필가, 포천신문 시민기자
김형출 기자 / mjmc00@hanmail.net입력 : 2011년 10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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