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댁시절의 일이였으니까 수년전에 있었던 일이다. 12남매 중에 6번째인 남편과 혼인을 하였는데 가풍을 알아야 한다며 일정기간 의무적으로 시집살이를 해야 한다는 시어머님의 말씀을 듣고 겁을 먹지 않을 수 없었다. 나에게는 모두가 상전이실 여러 식구들 안에서 과연 시집생활에 잘 적응할 지 자신이 없었다.
일정기간이 지나면 분가를 시켜주신다니까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두 팔을 걷어붙였다. 12남매가 모두 한집에 거주하는 것은 아니나 7,8명의 식구는 늘 한집에서 생활을 해왔다.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도 식구들이 모여 한 시간여의 담소를 마쳐야 각 방으로 돌아가는데 나는 이 시간이 없었으면 하는 생각을 늘 해왔다.
하루 종일 밥하랴, 빨래하랴, 청소하랴. 늦게 들어오는 식구들의 밥상을 따로 차려야 하는 일, 집안 어르신이나 시부모님 뵈러 찾아오는 적지 않은 친척들의 접대도 내 몫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매일 반복되는 나의 일과였으니까 피로하고 잠이 늘 부족했다.
그중에서도 제일 힘들었던 일은 두레박질이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해보는 일이다. 물을 담아 올릴 때는 그 두레박에 내가 딸려 들어가는 듯해 안간힘을 써야했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란 옛말과 같이 애를 쓰는 나를 보시면 두레박질을 시아버님이 대신해 주시곤 하셨다. 밥상을 안방까지 옮겨놓고 숭늉을 만들어 들고 들어가면 온 식구들의 식사는 끝이 났다. 나의 밥 먹는 속도는 더딘데다가 유난히도 식속도가 빠른 시댁식구들이어서 밥상에 둘러앉아 낯선 시댁식구들 앞에서 혼자 하는 식사는 차라리 거르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반찬도 모두 빈 접시이고 특별히 올라가는 고기나 생선류는 찾아보기 어렵다. 식구가 여럿이여서 밥상 앞에 조금만 늦어도 이렇게 된다고 하시면서 늦게 밥상머리에 앉은 나에게 시아버님은 상밑에서 생선 한토막이 담긴 접시를 내 앞에 내놓으신다. 정말 눈물겹도록 고마움을 느낀다. 또 하나 시집에서 정을 붙이고 살 수 있었던 일은 여러 시동생 중에 나의 귀여움을 유난히 받은 시동생이었다. 정이 많고 솔직하며 명랑한 다섯 번째 시동생이다.
이따금 나의 심경을 괴롭혀온 사람도 바로 그 시동생이었으니 아무 때고 가리지 않고 친구들을 몰고 오는 것이다. 점심때이고 저녁때이고 불쑥 불쑥 4,5명의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밥을 차려 달라는 것이다. 미안함을 느끼기는 하는지 반찬은 김치만도 좋다는 것이다.
중.고등 학교시절에는 아버님으로부터 공부하지 않는다고 책을 받아오던 그 시동생이 교육계에 몸을 담아 후진양성으로 20개성상에 청춘을 바치고 교장으로 정년 퇴직을 하고 나와 다시 이웃하고 살아가고 있다. 그 시동생의 대학시절에 우리 가족과 친척들을 울고 웃긴 이야기를 하고 싶다.
서울 돈암동에 살던 때의 일이다. 아침식사를 마친 식구들이 모두 나가고 나 혼자 집을 지키고 있는 아침나절이었다. 다급히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뛰어나갔다. 정복을 한 경찰관이었다. 문득 많은 식구들 중 누구에게 변이 생기지 않았나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어 불안한 마음으로 무슨 사연이 있는가를 물었다. 경찰관은 인사도 나눌 사이 없이 모모학생의 집인 것을 확인하고 그 학생이 한강에서 투신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기막힌 소식이다.
그는 나의 5번째 시동생이다. 믿기지 않는 말이었다. 오늘은 인천에서 전국체전이 있는 날인데 보조심판으로 차출되어 일찍이 나가야 된다며 서둘러 아침식사를 마치고 좋은 기분으로 집을 나간 시동생이 자살이라니? 영 믿기지 않는 소식이다. 운동을 즐기며 명랑하고 매사 긍정적인 그가 자살이라니? 이것이 사실이건 아니건 내가 결정하고 처리할 문제는 아니었다.
가족들에게 통지를 해야 하겠는데 누구에게 먼저 해야 할 지 전화번호는 어디에 있는지 등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 떠오르는 게 없다. 시골에 계시는 시부모님들께는 연락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지금과 같이 휴대전화가 있었던 시절이 아니어서 직장으로 학교로 사람을 보내 이 사실을 전해 가족 모두가 모였다. 가족 친지들이 사후문제를 의논하고 있었고 시아주버님 두 분은 경찰관과 함께 시신 인수차 한강 현장을 다녀오셨다.
시아주버님의 얼굴은 부패해서 확인이 되지 않았고 그가 입은 의상이나 벗겨져 있는 구두, 소주병과 약봉투는 시동생의 것이라고 보기에는 아닌 것 같다며 고개를 갸우뚱하신다. 그러나 그 경찰관의 말은 이 학생의 주머니에서 이 수첩과 학생증, 주민등록증이 나왔는데 어떻게 아니냐고 하면서 시신인수를 거듭 촉구한다는 것이다.
시부모님을 비롯한 식구들은 부패로 인해 시신의 확인도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의 몸에서 나온 증명서로 보아 확실성이 있는 것 아니냐며 준비를 늦추지 말자고 의견이 모아지고 있었다. 집 안팎에서는 음식준비에 한창이었고 방안에서는 통곡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해가 뉘였뉘였 넘어가고 있을 무렵, 전국체전을 마치고 돌아오던 그 시동생은 문 앞에 이르자 집안에서 퍼져 나오는 통곡소리에 놀래 무슨 일이 있느냐며 집안으로 들어선다. 마당에서 마루위에서 방안에서 모든 식구들이 뛰어 내려와 시동생을 부둥켜 안으며 꿈에서 깨어나는 듯 웃음과 울음이 한데 어우러져 합창 아닌 합창이 울려 퍼졌다.
영문 모르고 들어오시던 시동생은 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느꼈음인지 껄껄 웃으셔 모인 가족들에게 일일이 인사하며 즐거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