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살아가면서 서로 말을 주고받는다. 언어(言語)를 주고받는다. 그러면서도 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얼른 대답을 못한다. 언어 역시 매한가지다. 말이란 소리에 의미(意味)를 담은 것이다. 소리에 뜻을 담은 것이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언어에서 언(言)이란 소리요, 어(語)란 의미이다. 소리에 의미를 담은 것이 언어란 말이다. 그리고 영상(映像)에 의미를 담은 것이 요즘 흔히 영상콘텐츠(contents)라고 말하는 영상언어(映像言語)이다.
언어에는 사실어(fact term)와 관념어(notion term)가 있다. 사실어(事實語)란 우리가 다섯 가지 감각기관(感覺器官)으로 확인할 수 있는 언어를 말하는 것이고 관념어(觀念語)란 다섯 가지 감각기관으로 확인할 수 없는 언어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피부로 느끼고 하면서 표현하는 말들은 모두 사실어에 해당한다. 그것을 뛰어넘어 추상적(抽象的)으로 표현하는 말들은 모두 관념어에 해당한다.
물론 사실어와 관념어가 함께 가는 것도 있다. 남대문시장처럼 구체적인 장소를 지칭(指稱)하는 말은 사실어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시장(市場)은 엄연히 관념어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사유(思惟)하는 동물이다. 그것을 표현하고 기록(記錄)하려면 말이 필요하고 글이 필요하다. 문자(文字)가 필요하다. 그리고 단어(單語)가 필요하다. 단어가 있어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생각은 머리로 한다고 생각하나 그게 아니다. 생각은 단어로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아야 한다.
단어는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아무리 많이 생각하고 좋은 아이디어(idea)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없다면 더 이상 생각을 지속할 수가 없다. 그래서 생각은 단어로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 생각이 추상적일 때 사실어에서 관념어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 생각이 상식을 뛰어넘어 개념의 언어(conceptional language)나 관계의 언어(relational language)로 넘어가면 관념어가 되는 것이다. 하나하나 뜻을 지닌 개념의 언어가 단어로 사전에 등재(登載)되는 것이다. 사전에 올라가는 것이다.
문명세계의 중요한 언어들은 대부분 관념어로 이루어져 있다. 자유 사랑 책임 창조 질서 같은 말들은 모두 관념어이다. 사실어는 구체성(具體性)을 띠기 때문에 누구나 그 말이 갖는 의미를 같은 뜻으로 받아들인다. 사실(facts)로 존재하고 실제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구체성을 띠기 때문이다. 관념어는 그게 아니다. 관념어는 시대상황(時代狀況)과 이해관계(利害關係)에 따라 그 해석을 달리할 수 있는 개연성(蓋然性)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民主主義)하면 자유민주주의를 생각할 수도 있고 사회미주주의를 생각할 수도 있다.
같은 말을 하면서도 해석을 달리할 수 있고 풀이를 달리 할 수 있다. 그래서 말하는 사람의 의도(意圖)를 잘 파악해야 한다. 행간(行間)의 의미를 잘 읽어야 한다. 나는 ‘A’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는데 상대는 ‘B’라는 뜻으로 그런 말을 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해관계를 놓고 협상(協商)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같은 말이라도 전후 문맥(文脈)을 잘 살펴야 한다. 가능하면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말이나 단어는 피해야 한다. 내 생각만 하고 그냥 넘어가면 후회(後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낭패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말 한 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다. 말을 조심해서 하라는 말이다. 말을 가려서 하라는 말이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라는 말이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도 있다. 같은 값이면 좋은 말을 하라는 말이다. 사람들은 자유(自由)하면 마음대로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게 아니다. 자유는 생각할 때까지만 자유다. 그것을 외부로 표출하는 순간 구속(拘束)당하는 것이 자유다. 그래서 생각은 자유분망(自由奔忙)하게 하되 표현은 삼가라고 말하는 것이고 사실어와 관념어를 잘 구사(驅使)해서 좋은 인상을 받도록 하라고 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