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입구로 들어서니 도로마다 현수막이 가득하다. “청정지역 철원에 닭공장이 웬말이냐!" 공장형 양계장이 들어오고 트럭이 평야를 달리면 겨울마다 오는 철새들은 이땅을 다시 찾아올까. 현수막을 걸고 대형 양계장 시설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절실함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는 없지만 내게는 자연생태계가 파괴되고 철새가 멀리멀리 사라져 버릴까 그것이 우선 걱정이다.
재두루미가 왔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한나절을 다녀 봐도 한 마리 보이질 않는다. 황금물결이 일렁이던 들판이 거의 벼베기가 끝나고 완연한 늦가을의 정취에 빠져있을 때 삼사백 미터앞 차가 들어갈 수 없는 논 가운데 수십 마리의 재두루미떼가 눈을 비비고 봐도 역시 저렇게 많은 재두루미떼가 비상대책회의라도 하고 있는 걸까?
철원을 찾아온 재두루미가 모두 한 곳에 모여 있는 듯하다. 별 기대 없이 있던 마음은 급하게 렌즈 마개도 열지 않고 카메라에 장착하려 들이대며 손이 떨린다. 재두리미 쪽으로 살금살금 걸어가는 중에 경운기 한대가 먼저 그 옆을 지나가고 재두루미떼는 몇 바퀴 순회를 하고는 먼 하늘로 날아가 버린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기회가 와도 잡을 수 없다는 것을 가슴 저리게 느껴야했다.
며칠이 지난 새벽, 다시 찾은 그곳에서 준비를 끝내고 기다리니 북쪽 하늘에서 기러기떼 선발로 날아들고 몇마리씩 가족단위로 무리지어 날아와 촉촉이 젖은 대지위에 말끔한 회색빛 정장차림 재두루미들이 평화로운 아침 만찬을 즐긴다.
천연기념물 203호로 지정되어있는 재두루미는 겨울에는 암수와 어린 새 2마리 정도의 가족이 모여 수십 마리의 큰 무리를 지어 시베리아와 중국 몽골 등에서 한국으로 날아와 겨울을 난다.
철원시민들의 대형양계장 반대의 이유가 무엇인지 알지는 못하지만 철원평야를 돌다보니 논이었던 자리 가운데 시멘트로 공사 중인 양계장이 들어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공사의 주최자와 철원시와의 적절한 협의책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