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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출에세이=17] 인연(因緣)이 내게로 다시 왔다


김형출 기자 / mjmc00@hanmail.net입력 : 2011년 10월 10일
 
↑↑ 김형출 시인, 수필가
ⓒ (주)포천신문사 
인연을 유독 좋아하는 사람은 나뿐만 아닐 테지만, 인연은 내게로 찾아왔다가 어디론가 가버리는 요술 부리는 듯하다. 인연은 누구도 거스르지 못한다. 인연은 아름다움이요, 그리움이요, 슬픔이요, 이별이다. 그래서 인연은 만남과 이별이 되는 것이다. 많은 인연 중에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있다. 그 중심에 남편과 아내, 부모·자식 같은 필연도 있지만.

사전적 의미의 인연은 불교에서 인(因)과 연(緣)을 함께 부르는 말이다. 즉 인(因)은 결과를 산출하는 내적·직접적 원인이며, 연(緣)은 결과의 산출을 도와주는 외적·간접적 원인이다. 여러 가지 원인 가운데 주된 것이 인이며, 보조적인 것이 연이다. 또 인을 넓게 해석하여 인과 연을 합해 인이라고도 하고, 반대로 연을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 모든 존재는 인연(因緣)에 의해 생겨났다가 인연에 의해 멸한다.

오늘 밤은 기분이 별로여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어둠 사이로 가느다랗게 들려오는 누군가와 수군대는 소리에 잠을 깼다. 자정이 넘은 시각에 무슨 이야기 소리일까 궁금했다. 아내는 아들과 통화했다며 안심을 한다. 다시 누워 잠을 청해보지만, 이리저리 뒤척인다. 깜빡이는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전방 포병대대에서 군대생활 할 적에 아들을 낳았다. 아내가 산통을 느껴 병원에 가야 했다. 대대장이 지프를 내어준다는 데도 사양하고 전곡 대전리에서 택시로 40여 분을 달려 의정부 성모병원에 도착했다. 당시 성모병원은 의정부역 뒤편 어디엔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분만실에 들어간 아내는 한나절이 지나도 출산할 기미가 없었다. 초조하게 기다리던 나 역시 지루했다. 나는 병원을 빠져나와 정문 옆 선술집에서 대포를 들이켜고 있었다. 팔월 상순의 땡볕은 강렬했고 무더웠다. 오후 4시가 지났는데도 데워진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혼자 막걸리 한 대를 다 마시고 취기가 있는 상태로 선술집을 나오니 바깥은 여전히 푹푹 데워지고 있었다.

병실로 올라가보니 그때까지 산모는 산고 중이다. 분만이 순조롭지 않으니 더욱 초조하고 불안했다. 이러다가 산모나 뱃속에 든 생명이 잘못되지나 않을까,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간호사가 분만실 문을 빠끔히 열고 얼굴을 내미는 것이다. 얼떨결에 분만실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아내가 침상에 누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힘들게 낳은 아들이다. 첫아이 때 너무 힘들어 동생 보기를 포기했는지도 모른다. 그때 그렇게 힘들게 태어난 아들은 지금,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어릴 적에는 총명하고 잘생겼다는 소리를 자주 듣기도 하고 모두 우리 아들을 부러워하곤 했다.
“아들 잘 키우세요!” “네, 감사합니다.”

세월이 흘러 지금 아들은 30대 청년으로 장성했다. 자기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게 되어서 얼마나 좋아하고 기뻐했었는데, 아들은 대학로에서 뮤지컬 공연도하고 학교에서 모노드라마도 공연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연극이란 꿈을 잠시 접고 또 다른 일을 해보고 싶어 했던 아들이었다. 마지못해 커피전문점을 허락했는데 지금, 아들은 몸도 마음도 아프다. 커피전문점을 일 년 육 개월간 운영해 보니 재미가 별로라는 것이었다.

이해하려 하지만 안타깝기도 하고 아니 솔직히 화도 났다. 아들이 열심히 노력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장사는 시원찮다. 대리점의 한계인 것 같다. 대리점은 망해도 본사는 성장하는 모순된 구조가 어디 커피전문점 뿐이랴, 겉으로는 화려하고 멋있고 돈 잘 벌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은 직접 운영해보지 않고서는 모른다. 커피전문점, 요즈음 젊은이들이 누구나 한 번 운영해 보고 싶은 업종이기도 하지만, 살아남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아들 처지에서는 가게를 포기해야만 하는 갈림길에 서 있었던 것이다. 이러고 보니 아들에게 더욱더 미안하다. 아들이 강력히 원하고 좋아하는 일이라고 하지만 최초에 만류해야 했었다. 그러지를 못했다. 아들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지금은 두 마리 토끼를 쫓다가 한 마리의 토끼도 잡지 못할 것 같은 생각에 마음이 착잡하다. 우선 아들 몸부터 추스르고 난 후 충분한 시간을 갖고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 급한 것은 가게를 빨리 처분하는 일이다. 애써 마음을 추스르지만 혼란스럽고 복잡하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우리네 인생,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데도 늘 조급하다. 먼 앞일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이 순간만 생각하기로 했다. 이순간이 좋으면 만사가 다 좋은 거다. 인연도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한 것, 아들과의 소중한 인연 지금부터라도 아름답게 가꾸도록 온 정성을 다해야겠다. 인연이 내게로 왔다.

김형출 / 시인, 수필가
김형출 기자 / mjmc00@hanmail.net입력 : 2011년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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