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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용 칼럼] 포천의 연혁 찾기와 면암정신


이희용 기자 / heeyeong1@hanmail.net입력 : 2011년 10월 10일
↑↑ 이희용 칼럼니스트, 포천신문 자문위원
ⓒ (주)포천신문사
포천이 자랑하는 애국의병장 면암 최익현(勉庵 崔益鉉) 선생은 일제의 단발령에 항거해 “내목을 잘라도 내 머리카락은 자를 수 없다”며 결연히 분개하였고, 국권을 상실하자 백성에 대한 의를 지키고자 늙은 몸을 이끌고 800여명의 의병을 일으켜 구름같이 일본 침략자들에 항거하였다.

그렇지만 일제가 의병을 제압하기 위해 보낸 병력이 조선군임을 확인하고는, 동족의 가슴에 총을 겨눌 수 없다며 즉시 의병을 해산시키고 통한을 삼키며 참모들과 함께 정부군에 투항하게 되는데, 이때 일제는 “조선군 10만은 두렵지 않으나 진실로 최익현 한 사람은 두렵다”고 하며 면암의 의로운 애국심을 두려워했다.

막상 면암을 구금한 일본군사령부는 그분의 방면을 요구하는 유림들을 다독거릴만한 명분도 없었고, 만에 하나라도 조선의 유림들이 구름같이 몰려와서 면암의 석방을 요구하며 난동을 부린다면, 유혈참극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교활하게 약식 재판으로 면암의 신병을 일본 땅 대마도(對馬島)에 유폐하였다.

1906년 음력 11월 17일 면암 최익현 선생은 향년 74세를 일기로 대마도에서 일본에게 너희들이 주는 음식은 물 한모금도 먹지 않겠다며 단식으로 순국(殉國)하시게 된다. 그 때 임병찬을 비롯한 제자들에게 마지막 남긴 유시의 내용이다.
“起瞻北斗拜瓊樓(기첨북두배경루), 白首蠻衫憤悌流(백수만삼분제류), 萬死不貪秦富貴(만사불탐진부귀), 一生長讀魯春秋(일생장독로춘추)”
“일찍 일어나 북두를 우러르고 임금님 계신 곳에 절하면, 흰머리 오랑캐의 옷자락에 분한 눈물 쏟아져 흐른다네. 만 번을 죽는다 해도 어찌 부귀는 탐하리. 평생을 읽은 책이 노나라의 춘추라네”

선생이 남기신 유시의 마지막 구절, “평생을 읽은 책이 노나라 춘추라네”가 의미하는 것은, 그분이 파란만장한 고난의 삶을 살면서도, 평생 동안 역사에 대한 공경심과 두려움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역사 앞에서 의로운 실천을 할 수 있었던 면암 선생의 선비정신 속에는, 나라가 무엇이며 애국애향이 무엇인가를 온몸으로 보이셔서 후학들의 역사의식에 깊은 깨달음이 되고 있다.

최근에 포천에서는 지명 사용시기와 관련한 역사기록에 대한 논란이 있는데, 포천시가 계획하고 있는 “포천 600년 사업”과 관련해 현재 포천군지에 수록된 내용을 수정보완하지 않고, 서둘러 사업을 추진하다가 고려 말에 포천이라는 지명을 사용한 내용이 발견되어 이와 관련한 위원회를 소집하고 지명사용 시점을 다시 특정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에는 “포천”과 “포주”라는 지명이 모두 기록되어 있어, 무리하게 사용 시기를 특정하기에는 차후에도 논란이 될 수 있으므로, 실록으로 지명연혁을 밝히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보통 지명을 처음으로 사용한 근거를 제시할 때는 그 지명으로 고쳤다는 시기나 연도가 정확하게 기록되었거나, 혼용을 했더라도 어느 시기의 기록에 그 지명이 처음으로 등장하는가를 먼저 확인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포천의 경우는 지명을 언제부터 사용했다는 연도나 날짜에 관한기록이 없다는 것이 시기결정에 어려운 문제이고, 포천시가 미리 특정해 놓은 태종 13년(1413년) 이전실록기사에도 명확히 “포천”이라는 지명이 여러 번 기록되어 있는 것과,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공양왕 2년 이전에 포천이라는 지명을 사용한 기록이 딜레마이다.

특히 연도와 날짜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들은, 뒤에 책을 만든 편찬자가 임의로 그 내용을 고칠 수도 없을뿐더러, 자칫 실록의 내용을 오기라고 주장하게 된다면 역사를 기록한 세계기록문화유산의 품격을 훼손하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으니, 포천군지의 참고문헌으로 쓰인 책이 아닌 다른 기록을 참고한 일부 학자들의 주장만으로 수백 년 전의 기록을 고칠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연혁을 사용한 날짜를 정하는 것도, 역사기록에 정확한 표기가 없으면 후세에서 마음대로 특정할 수가 없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렇게 명확하지 않은 근거자료를 유추하여 임의로 연도와 날짜를 특정했다가, 후에 다른 권력에 의해 사실이 아니라고 다시 내용을 뒤집는다면 역사왜곡논란으로 일이 확대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최초로 지명을 사용한 시기를 정하는 것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실증할 수 있는 명확한 자료를 확인한 후에 정해야 마땅한 것이다.

지명은 문화의 산물이며 지명 속에는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삶의 다양한 형태들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명으로 그 지역의 문화를 짐작할 수도 있는 것인데, 특정한 목적이나 의도된 필요에 의해서 기록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변질시킨다면 그것은 역사와 문화의 혼란을 불러올 수도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그러니 우리가 그토록 자랑하고 존경하는 애국의병장 면암 최익현 선생이 평생을 읽으셨다는 노나라 춘추를 대하듯이, 그 분의 고귀한 역사의식을 마음에 근본으로 삼아서, 기록을 비롯한 역사 앞에 마음자세를 공손히 하여, 필요에 의해서 기록을 해석했다는 오해가 없도록, 있는 그대로의 기록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객관적이고 떳떳한 역사를 깨끗하게 후세에게 물려줄 수 있기를 마음 깊이 희망하는 바이다.

이희용 /
광릉숲 시인, 연극인, 칼럼니스트, 한국스카우트 경기북부연맹 감사, 전 경기도예총부회장, 포천시지역사회복지협의체 초대위원장, 포천시 수능시험장 유치추진위원장, 포천신문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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