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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렬의 세상보기] 좌우의 구분을 폐하라


김성열 기자 / kims@daejin.ac.kr입력 : 2011년 10월 09일
↑↑ 김성렬 대진대 문창과 교수, 본지 칼럼위원
ⓒ (주)포천신문사
요즘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국민들의 비상한 관심사가 되어 있다. 이른바 안철수 신드롬으로 정당정치에 대한 염증이나 혐오가 상당한 정도로 확산되어 있음이 확인되면서 야권의 대표 주자로는 박원순 변호사가 선택되었다. 박 변호사는 시민의 힘으로 선출된 후보라 하겠는데 언론, 그 중에서도 보수언론인 조·중·동은 박 후보를 좌파로 구분한다. 물론 박 후보가 민주당과 연대하겠다 공언했으므로 그런 표식을 다는 것이 사리에 닿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참에 한국 사회에서 좌/우의 구분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그런 구분이 합당한지를 한 번 물어보는 것은 새삼스런 질문이 아니라 나름의 절실성이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원래 좌익(左翼) 또는 좌파(左派)는 정치성향 분포에서 우파의 반대편에 위치한 쪽으로, 사회개혁을 추구하는 정치성향을 가진 세력을 일컫는다. 한편으로는 자유보다는 평등을 중시하는 정치 입장을 말하고 달리는 진보주의라고 이른다. 좌파란 명칭의 유래는 프랑스 대혁명 당시, 상대적으로 사회변동에 온건한 지롱드당이 의회의 오른쪽 부분에, 급진적인 자코뱅당이 의회의 왼쪽 부분에 위치한 데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그러니까 좌파란 사회의 개혁을 신념으로 하되 평등과 분배 쪽에 그 무게 중심을 두는 세력이다.

반면에 우파는 국가, 가족, 재산권 등의 가치에 중점을 두면서 급격한 변화에 반대하고 전통 또는 그것의 축적을 중시하는 경향을 이른다. 우파는 그리하여 대개 보수파라 불린다. 보수주의 사상의 창안자인 18세기 영국 의원 에드먼드 버크(E.Burke)는 원래 영국의 미국에 대한 식민지 정책을 맹렬히 비난하고, 토리당에 가해지는 언론탄압에 대항해 언론자유를 열렬히 주장한 진보적 인사였지만 1789년 발생한 프랑스 대혁명이 너무 과격하다고 보고 기존의 권위와 가치를 지키면서 사회는 점진적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 인물이 보수파의 시조격이다. 첨언한다면 수구파는 점진적인 변화조차 거부하고 과거의 가치와 권위에만 집착하는 이들을 이르는 것이다.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는 이러한 개념들이 상당 정도의 변화를 거쳐 ― 분배/성장, 국가의 권위에 대한 소극적 인정/적극적 인정, 환경 보존/개발, 개인의 자유/집단의 질서 유지, 피고용자의 권리/고용자의 권한, 경쟁의 조정/경쟁의 전면 인정 중 어느 쪽에 더 큰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 좌/우가 갈리는 경향이다. 그러나 좌/우의 구분이 이렇게 이뤄진다면 이 글이 ‘좌우의 구분을 폐하라’는 다소 자극적인 제목을 정하진 않았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좌우의 구분은 특히 좌파 쪽에 불리하게 되어 있다. 이는 길게 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나라가 처한 분단이라는 특수한 조건 때문이다. 해방 이후의 좌우 대결, 그리고 북한에 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 우리는 좌파에게 빨갱이/과격한 혁명주의자란 이미지를 뒤집어 씌워, 좌파는 용공주의자 또는 북한에 동조하는 인사들로서 음모적이며 반역적이라는 이미지를 창출해 놓고 있다.

근자에는 그나마 이러한 인식들이 상당 부분 완화된 느낌이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좌파란 딱지는 특정인을 어떤 색깔로 올가미지우는 주홍글씨 역할을 한다. 정치인이나 명망가들이 자신을 좌파라 규정하는 데 흔히 손사래를 치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좌/우파는 에드먼드 버크의 경우에서도 볼 수 있듯이 상대적인 개념이다. 버크는 애초에 영국의 주변부였던 아일랜드 출신으로 기존 체제를 변혁하고자 한 진보주의자였으나 급진적 사회 변동을 외친 프랑스 혁명의 이념에 비해서는 보수적인 가치 체계를 주장하여 보수주의자의 시조로 거론되고 있을 따름이다. 요컨대 좌/우의 개념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할 수 있는 용어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좌파라 하면 무언가 불순한 개념으로 받아들이며 특히 요즘 들어서는 이른바 조·중·동 등의 메이저 언론들이 ‘종북좌파’라는 단어를 새롭게 조합하여 좌파라 하면 북쪽과 연계되어 있다는 이미지를 합성해 내는 형국이다. 좌파는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분배와 평등에 더 역점을 두지만 그것이 북한 정권 지지와 이어질 개념은 아니다. 오히려 좌파란 이성과 사고를 관장하는 좌뇌(左腦)의 기능에 더 의존하는 데서 좌파란 명칭이 유래했다는 설처럼 매사를 이성적으로 분석, 대처하려는 경향을 가진 세력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좌파에 흔히 ‘종북’이란 딱지를 붙이는 것은 온당치 않다. 물론 오늘날 일그러진 북한의 기형적인 공산주의에도 동조하는 정신 나간 사람이 어딘가에는 있겠지만 종북좌파란 어휘를 빈번하게 거론하여 좌파 전체가 마치 한국 사회에 불순한 세력인 것처럼 색깔을 입히려는 것은 좌우가 온건하게 균형을 이루어 사회가 발전해야 할 오늘의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 처사이다.

따지고 보면 좌/우라는 이분법적 구분부터가 문제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좌/우는 상대적 개념일 뿐 아니라 실상 교육이나 문화 등에서는 보수적인 가치관을 지닌 사람도 있을 터이고 복지나 분배 등의 분야에서는 진보적인 가치를 지닌 사람도 있을 수 있는 터에 한 가지 색깔을 입히려는 것은 부당한 파당적 처사이다. 미국의 민주당이 복지나 분배에 더 비중을 두고, 공화당이 성장과 개인의 자유에 더 비중을 두지만, 이를 두고 좌파당 우파당이라 하지는 않는다.

물론 요즘 오바마 정권의 분배적 복지 정책을 두고 좌파 공산주의라 비난하는 정치인들도 없지 않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정론적 성격의 규정일 따름이다. 오바마가 미국을 공산주의 국가로 만든다는 것은 턱도 없는 상상이 아니겠는가?

오히려 우리는 요즘 자본주의의 상징인 미국에서 1%의 소수가 사회의 부를 독점하고 있다면서 일자리를 요구하는 젊은이들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이러한 사태는 자본가들이 부를 독점할 때 마침내 프로레타리아 혁명의 시기가 도래한다는 마르크스의 선언이 아직 폐기되지 않은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조차 불러 일으킨다. 조선일보는 요즘 ‘자본주의 4.0’이라는 어젠다를 내세워 선의의 나눔과 분배가 자본주의를 지킨다는 사회운동을 주창하고 있지만 과연 개인의 선의로써 경쟁과 독점을 향해 치닫는 자본주의의 부정적 요소가 상쇄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요컨대 제도와 시스템의 보완으로 자본주의제의 부정적 요소인 약육강식의 폐해를 걸러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제도와 시스템을 구비하는 데 좌우의 대립이라는 냉전적 사고로 대처해서는 안 될 일이다. 정책의 차이와 대립에서 오는 요인은 차라리 진보와 보수라는 용어로 대치해야 한다. 더구나 조중동은 종편 채널을 확보하여 담론 형성에 더욱 막강한 영향을 끼칠 터인데 좌우의 양날개로 나는 것이 균형잡힌 건강한 사회라면 이런 개념의 선택에 더욱 신중해야 할 것이다.

김성렬 / 대진대 문창과 교수, 중앙도서관장. 문학평론가 겸 소설가, 본지 칼럼위원
김성열 기자 / kims@daejin.ac.kr입력 : 2011년 10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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