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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출 에세이=15] 가족의 의미


김형출 기자 / mjmc00@hanmail.net입력 : 2011년 09월 19일
 
↑↑ 김형출 시인, 수필가
ⓒ (주)포천신문사 
오랜만에 고향에 갔다. 40여 년 긴 세월이 지난 고향 집는 옛날 그대로였다. 마루에는 동네 사람으로 북새통이다. 아버지가 안방에서 환한 얼굴을 내미시면서 나오신다. 작은아버지, 육촌 형님도 보인다. 작은방은 내가 뒹굴던 바로 그 방이었다. 너저분하게 팽개친 옷가지들, 메케한 냄새들, 꼬질꼬질한 방바닥도 여전하다. 뭔 잔칫날인지 먹을 음식이 가득하다. 아버지와 형님은 나를 무시하고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나도 토라져 혼자 작은 방에서 뒹군다. 한참 후 동네 사람들이 돌아가고 형님이 내게로 다가와서 말을 붙인다.

너 당장 동네 동생들 데리고 운전 시험을 치르고 오란다. 뭔 운전면허? 나는 형님에게 대들었다. “형제도 아닌 저들을 왜 운전면허장까지 태워줘야 해요!” 억울해서 식식거리는데 눈을 떴다. 꿈이었다. 참 오랜만에 꿈에서 마주치는 낯익은 얼굴들이었다. 거참 이상하다, 오늘이 아버지 기일이다. 해마다 형님 집에서 형제가 다들 모였었는데 올 기제사에는 평일이라 올 사람이 몇 안 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고 싶어 꿈에 보이셨나?

엊저녁에 아들이 강아지 (몰티즈Maltese)를 데리고 오랜만에 집에 왔다. “강아지를 키우는 것은 자유지만 절대로 집안에는 데려올 수 없다”라고 이미 못을 박아놓았지만, 지금 아들 처지가 그렇지 못하다 아들은 내일 두 번째 항암치료에 들어간다. 치료 후 회복하는 하루 이틀 동안은 강아지를 돌봐줄 사람이 없다. 그래서 이틀 동안만 강아지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강아지 이름은 ‘요거트’인데 생후 1년 반 갓 넘은 수놈이다. 털이 희고 검은 눈동자를 가진 귀여운 녀석이다.

요거트는 거실이고 방이고 온 데를 휘젓고 다닌다. 재롱떠는 것이 귀엽다. 한편으로 측은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들은 강아지 돌보는 법 몇 가지만 일러두고는 급히 기거하는 오피스텔로 떠났다. 하룻밤 집에서 자고 병원에 곧장 가라 해도 고집을 부린다. “요즘 가족은 함께 살지 않으면 가족이 아니다.” “때로는 살갑게, 때로는 무관심하게, 또 때로는 아등바등 싸우다가도 보듬고 사랑하는 가족. 인생사 부대끼고 이해하고 다투기 마련. 사실 그래야 좀 사람 사는 맛도 있는 게 아닐까.”라는 어느 책자의 글귀가 생각났다. 가족의 범위도 시류에 따라 급변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좀 놀랐지만, ‘가족은 가족이다’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우리나라도 산업화와 도시와의 영향으로 대가족은 감소하고 소가족과 핵가족은 증가하고 있다. 가족에 대한 인식이 희박해진 것은 오늘 일이 아니라 70~80년대 급속한 산업성장과 함께 전통적인 대가족 체제는 무너졌고 핵가족이 일반화됐다. 2000년 이후에는 휴대전화, 인터넷 등 정보기술(IT) 발달로 핵가족화는 더욱 심화했다. 여기에 늦은 결혼, 저출산 등이 심화하면서 이제는 ‘1인 가족’도 이제는 낯설지 않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24일 발표한 가정실태조사는 이런 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다섯 명 중 한 명은 따로 사는 친부모는 가족이 아니라고 했다. 네 명 가운데 세 명은 조부모가 가족이 아니라고 했다. 또한, 장인·장모가 가족이라는 응답(80%→51%)과 형제·자매(81%→63%), 조부모(64%→23%)가 가족이라는 응답도 크게 줄었다. 사위와 며느리를 가족이라고 여기는 비율 역시 각각 24%와 26%로, 5년 전(50%, 58%)의 절반으로 줄었다. 친손자나 외손자를 가족이라 생각하는 응답도 5년 만에 절반 수준(59%→27%, 48%→25%)이 됐다. 조사에서 ‘자식은 나이 든 부모를 모시고 살아야 한다.’ ‘자식은 나이 든 부모를 경제적으로 부양해야 한다.’ ‘딸도 아들과 똑같이 나이 든 부모를 돌보아야 한다.’ 등의 질문에는 5점 만점에 평균 3.4~3.6점의 응답이 나와, 노부모와의 동거 등에 대해 어느 정도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 결과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이다. ‘가족 해체’라기보다 과거엔 혈연·혼인 관계에 따라 가족을 넓게 생각했지만, 이젠 “같이 사는 사람이라는 동거(同居) 개념의 협소한 가족관이 확산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러다가 가족 자체가 해체되고 붕괴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가족은 한울타리 안에서 기거하는 가장 따뜻하고 포근한 구성원이다. 구성원이 흩어지면 가정도 가족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 뿌리조차 등한시하는 각박한 세상이 올까 봐 두렵고 가족이 해체될까 봐 불안하다. 오랜 옛날, 사락사락 눈 내리는 겨울밤이면 작은방에서 두툼한 솜이불을 덮어쓰고 누나들과 동생들이 신이 나게 장난치던 따뜻한 아랫목이 그리워진다.

김형출 / 시인, 수필가, 포천신문 시민기자
김형출 기자 / mjmc00@hanmail.net입력 : 2011년 09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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