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오랜 옛날부터 태양의 운행 시간에 맞춰 하루 일과를 정했다. 이런 연유로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 가운데 태양이 뜨고 지는 모습과 관련된 단어가 많다. 황혼(黃昏)과 사양(斜陽) 그리고 여명(黎明)과 서광(曙光)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여명과 서광은 ‘새벽 동이 틀 무렵의 빛’이란 뜻을 지닌 말이다. 흔히 기대하는 일에 대해 나타나는 희망의 징조(徵兆)를 비유해서 말할 때 이 말을 쓴다.
황혼과 사양은 둘 다 ‘해질녘’이란 뜻이지만 그 쓰임은 약간 다르다. 황혼은 사람의 생애(生涯)가 한창인 고비를 지나 쇠퇴(衰退)하여 종말(終末)에 이른 상태를 이르는 말이고 사양은 기술 산업 따위가 새로운 것에 밀려 점점 몰락(沒落)해 감을 비유한 말이다.
여명과 서광이 미래에 펼쳐질 희망(希望)과 가능성(可能性)에 무게를 두고 하는 말이라면 황혼과 사양은 지나온 나날들을 되돌아보며 추억을 반추(反芻)하는 회한(悔恨)에 무게를 두고 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말해 그것들은 알파요 오메가인 셈이다. 시작과 끝을 암시(暗示)하는 것이다. 여명이 있어 황혼이 있고 서광이 있어 사양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주의 질서요. 자연의 법칙이다. 그 누구도 시간의 흐름을 막을 수 없고 가는 세월을 붙잡을 수 없는 것이다.
세월은 흘러가는 것이고 인생은 늙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산업은 출몰성쇠(出沒盛衰)하는 것이다. 새로운 사업이 대두(擡頭)되면서 기존의 사업은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이다. 영원한 것은 없는 것이다. 순환의 쳇바퀴 속에서 돌고 돌 뿐이다.
물론 황혼(黃昏)은 쓸쓸한 것이다. 사양(斜陽) 또한 쓸쓸한 것이다.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비탄(悲歎)에 빠질 필요는 없다. 물리적인 현상을 정신적으로 승화(昇華)시켜 나가면 된다. 물리적으로는 쓸쓸하나 정신적으로는 그게 아니지 않은가! 낙엽이 떨어져야 새순이 돋듯이 인생 또한 그러하지 아니한가! 계절이 바뀌었는데도 낙엽이 떨어지지 않고 그냥 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 나무는 시들어 죽고 말 것이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후대를 위해 황혼을 아름답게 수놓을 수 있어야 한다. 사양산업에 매몰(埋沒)되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시대의 흐름을 잘 읽어야 한다. 현대는 4.0시대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4.0시대에는 그 시대에 맞는 생각을 해야 하고 그 시대에 맞는 산업구상을 해야 한다. 3.0시대나 2.0시대에 성공했다고 해서 그것만을 붙들고 있다가는 낭패하기 십상이다. 물론 제조업이 중요하다. 제조업이 기본을 이루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아니다.
공장 하나 갖고 있지 않고도 전 세계의 스마트폰 시장을 석권(席卷)하고 있는 기업들을 보라. 그들은 아이디어로 승부(勝負)한다. 소통(疏通)으로 승부하고 융합(融合)으로 승부한다. 산업 디자인[design)으로 승부한다.
그 생각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인문학(人文學)에서 나오는 것이다. 와이(why)를 추구하는데서 오는 것이다. 상상력[imagination]을 발휘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인문학이 상상력의 원천(源泉)구실을 하는 것이다. 하우 투(how to)만으론 안 되는 것이다. 하우 투와 더불어 와이를 앞세워야 한다. 사고력[thinking ability]을 앞세워야 한다. 공식(公式)만 외워서는 안 된다. 왜 그리 되는가! 스스로 추리(推理)하고 그 답을 찾는 훈련을 해야 한다. 스스로 그 힘을 키워나가야 한다.
외국에서 인정받아 성공하는 사람들이 왜 우리나라에서는 안 되는가? 우리의 마인드(mind)가 3.0 아니 2.0시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하루 빨리 사양을 떨쳐버리고 황혼에서 깨어나야 한다. 여명과 서광을 향해 다시 뛰어야 한다. 발상을 바꾸어야 한다. 모난 돌을 때릴 것이 아니라 활용해야 한다. 그들의 생각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게 정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