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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출 에세이=14] 산 오르며, 추억하다


김형출 기자 / mjmc00@hanmail.net입력 : 2011년 09월 06일
 
↑↑ 김형출 시인, 수필가
ⓒ (주)포천신문사 
산행 공지가 카페에 떴다. 주말산행은 도락산(道樂山)이다. 가까이 살면서도 도락산은 생소하다. 후덥지근한 날씨 탓에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듯하다. 일행과 함께 시외버스를 타고 집결장소에 막 도착하니 먼저 도착한 회원 한 사람이 서 있다. 잠시 뒤 회원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모두 열네 명이다.

양주 도락산(440.8m)은 불곡산이 앞길을 막고 터주지 않자 화가 나서 동쪽방향으로 돌아앉은 산이라는 설이 있고 또한, 도사가 도 닦던 산이라, 도락산이라는 말이 있다. 도락산은 경사가 완만하여 산 오르기가 수월하고 가벼운 기분으로 즐기는 데는 안성맞춤이다. 아마도 도락산은 '돌의 산'이라는 뜻의 돌산이 한자로 표현되면서 돌악 - 돌악산 - 도락산으로 변천하는 과정에서 돌압산, 두락산, 노락산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돌은 정상 가까이 올라가야 만이 볼 수 있다.

도락산 정상을 알리는 푯말은 아직 설치 중인 듯 비스듬히 누워 있다. 정상 100여 미터 아래 협소한 공간에 누군가 정성 들여 쌓아올린 돌탑이 인상적이다. 갑자기 하느님이 쉬를 하신다. 후두두~ 후두두~ 요실금인가, 금방 찔끔찔끔 ‘싸다 멈추다.’를 반복한다. 변덕스러운 날씨 탓만 할 것이 못 된다. 하루에도 수차례씩 '이랬다가 저랬다.'를 반복하는 변덕스러운 마음이 더 문제이다. 물론 나 자신도 포함된다.

산은 언제 보아도 말이 없다. 늘 바위 같은 무언으로 인간의 어리석음을 일깨워준다. 산은 밟으면 밟히고 때리면 얻어맞고 흉봐도 성낼 줄도 모른다. 오늘도 산에서 내가 배운 지혜는 나 자신의 반성이요, 성찰이다. 산 오르는 발걸음은 힘들지만 마음만큼은 즐겁다. 풀잎에 나풀거리는 엽록소 역시 정겹다. 삶의 무게가 가벼워지고 인생이 즐겁고 아름다울 수 있도록 우리가 산 벗이 되어 보자꾸나.

내가 처음 대하던 산은 너무 높고 웅장해서 똑바로 쳐다볼 수 없는 산이다. 산은 고향 사람들의 가난을 도와주는 밥줄이었기 때문이다. 산나물과 약초, 땔감을 구하러 산으로 오르는 사람들 표정은 힘들어도 행복해 보였다. 이른 아침부터 소달구지를 끌고 등에는 지게를 지고 먼지가 풀풀 날리는 자갈길을 따라 장숫골(長水谷)로 향하는 나무꾼들의 행렬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 긴 행렬의 꼬리는 아마 5리쯤 되었을 거다. 고사리며 두릅 쑥을 잔뜩 캐어 머리에 이고 내려오는 아낙들의 활짝 핀 구릿빛 얼굴은 행복해 보였다. 허해진 가난이 있어도 사람 사는 정이 돈독한 산촌 사람들의 그을린 웃음 역시 화사했다.

나도 어머니 꽁무니를 따라 고사리 꺾으러 기백산 중턱까지 가본 적이 있다. 검정 고무신을 신고 기백산 육칠백 미터 중턱을 겁 없이 누비고 다녔으니 알만하다. 요즈음처럼 질 좋은 등산화, 등산복 없이도 아무 탈 없었으니 지금 생각해봐도 대견하다. 산골 촌놈이라면 누구나 다 이런 추억 하나쯤은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으리라. 한 여름날, 땡볕 한 줌 호주머니에 넣고서 산에 올라가면 불볕더위에 숨이 헉헉 차올라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래도 푹푹 익은 풀내음을 맡으며 여치도 잡고, 칡 이파리도 따 모자도 만들어 쓰고, 소 등도 올라타며 신 나게 놀았다. 찜통더위는 개구쟁이의 친구가 되기도 했다. 놀다가 지치면 심원정 시퍼런 소(召)에 퐁당 몸을 담그고 입술이 새파랗게 질릴 때까지 멱을 감다가 덜덜덜 닭살이 돋으면 밖으로 기어 나와 너럭바위에 누워 흘러가는 뭉게구름을 보며 눈을 감곤 했다.

벼 이삭이 누렇게 익은 가을이면 개구쟁이들은 더욱더 신이 났다. 황석산과 기백산 꼭대기로부터 붉게 타 내려오는 단풍을 바라보며 논두렁을 정신없이 쏘다녔다. 통통하게 살찐 메뚜기를 소주병에 빽빽하게 잡아넣고 집에 돌아올 때면 서산에 걸린 노을이 아름답게 피어나고 하루에 지친 저녁연기가 수그러든다. 산골의 겨울은 낮이 짧고 몹시 춥다. 그러나 꽁꽁 얼어붙은 지우천에서 썰매 타는 재미 때문에 추운 줄도 모르고 종일 한데서 신 나게 놀았다. 함박눈이 소록소록 내리는 겨울밤, 장독에서 몰래 곶감 훔쳐 먹고 킥킥대는 재미는 호랑이도 부러워 할 거다.

지우천 건너편 표고버섯 모양의 야트막한 산은 어린 시절 내 꿈을 키운 곳이다. 붉은 진흙을 캐어 호롱이며 주전자며 그릇을 만들며 소꿉장난하고 ‘송구’꺾어 먹고 소몰이하며 바위에서 돌 구르고 천진난만하게 놀았다. 이젠 고향 앞산은 산림녹화사업으로 더욱 울창하여 입산금지가 되었지만, 마을 곳곳은 관광지 조성사업으로 지우천은 알몸으로 바닥을 드러내며 정비되어 얼굴이 확 바뀌었다. 고향은 어느 해부터인가 개발이란 이름으로 자연이 훼손되고 변조되었다. 성형수술 탓인지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산 오르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부지런하다는 것이다. 부지런하지 못하면 산에 오를 수가 없다. 3년 전 산악회에 처음 가입하고 두 번째 따라나서는 등산, 정상까지 무사히 동행할 수 있을까, 지레 걱정이 앞섰다. 처음 2월 북한산 등산에서 혼쭐 난 적이 있다. 몇 년 만에 산에 오르다 보니 몸이 마음 같이 따라주지 않고 다리에 번갈아 가면서 쥐나는 바람에 일행 몇 명은 정해진 일정을 포기해야만 했다. 나 때문에 계획에 차질이 생겨 벗들에게 미안해서 쥐구멍이라도 찾을 뻔했다.

김형출 / 시인, 수필가, 포천신문 시민기자
김형출 기자 / mjmc00@hanmail.net입력 : 2011년 09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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