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생활에서 우리는 개발(開發)과 계발(啓發) 또는 건립(建立)과 수립(樹立)이란 말을 자주 혼동한다. 開와 啓는 똑같이 ‘열다’라는 뜻을 지닌 뜻글자이나 그 쓰임은 다르다. 개발은 물질적(物質的)인 측면에서 토지나 천연자원 따위를 개척(開拓)하여 발전시킨다는 뜻이고 계발은 정신적(精神的)인 측면에서 슬기나 재능 사상 따위를 일깨워 준다는 뜻이다. 그리고 建과 樹는 똑같이 ‘세우다’는 뜻을 지닌 뜻글자이다. 하지만 건립은 물질적인 것으로 건물이나 기념비 동상 답 따위 같은 것을 만들어 세우다는 뜻이고 수립은 주로 정신적인 것으로 정부 제도(制度) 계획 같은 것을 이룩하여 세우다는 뜻이다. 수립에서 樹를 쓴 이유는 정부 제도 계획 같은 것을 한 생명체로 보고 樹 본래의 뜻인 ‘나무’를 심고 가꾸듯이 계속해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뜻에서 그리 한 것이다.
건립하기 전에 먼저 수립을 해야 한다. 건립하기 전에 수립을 먼저 해야 하듯이 개발하기 전에 계발을 먼저 해야 한다. 계발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집을 지으려면 먼저 설계도(設計圖)가 있어야 하듯이 개발 역시 그러하다. 개발하기 전에 먼저 마스터 플랜(master plan)을 세워야 한다. 설계도 없이 집을 짓는다는 것은 상상(想像)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먼저 수립해야 한다. 생각해야 한다. 무엇(what)을 위한 개발이고 누구(who)를 위한 개발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다음으로 풍토(風土)를 생각해야 한다. 기후와 지형(地形)을 생각해야 한다. 물길을 생각하고 바람을 생각하고 통풍(通風)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옛 사람들이 풍수(風水)를 말한 것이다.
지리서(地理書)를 보면 명당(明堂)이란 말이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대지(大地)라 부른다. 둘 다 좋은 자리란 뜻이다. 명당도 집짓기에 좋은 자리가 있는가 하면 산소[墓] 쓰기에 좋은 자리도 있다. 일반적으로 이를 양택(陽宅)이라 부르기도 하고 음택(陰宅)이라 부르기도 한다. 양택이든 음택이든 그 요체는 장풍득수(臟風得水)에 있다. 장풍득수란 바람을 잠재우고 물을 얻는다는 뜻이다. 바람을 잠재우고 물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자리가 바로 명당이요, 대지이다. 옛 사람들은 이러한 자리를 관념적(觀念的)으로만 봤다. 관념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다. 구체적(具體的)으로 살펴봐야 한다. 양기(陽氣)가 발산하는 자리를 정확히 찾아야 한다. 양택이던 음택이던 양기가 발산하는 자리가 좋은 자리이다.
물론 개발은 필요하다. 토지를 개간(開干)하고 천연자원을 개발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이 양택이던 음택이던 생각을 먼저하고 점검을 먼저 해야 한다. 그런 연후에 설계도를 짜거나 마스터 플렌을 세워야 한다. 설계도나 마스터 플렌도 없이 일을 저지르는 일은 없어야 한다. 물론 지표조사도 해야 하고 환경평가(環境評價)도 받아야 한다. 지하에 어떤 유적(遺蹟)과 유물(遺物)이 잠자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큰 물이 지나갈 때 어디로 흐르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남의 일만은 아니다. 우리도 당하지 않았는가. 100년만의 폭우(暴雨)라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그렇게 변명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자연재해(自然 災害)이니 어쩔 수 없었다고 자포자기(自暴自棄)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전통적으로 서양 사람들은 자연을 정복(征服)의 대상으로 보았다. 동양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동양에서는 자연을 공존(共存)의 대상으로 보았다. 그래서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개간도 하고 건물도 세웠다. 요즘처럼 무조건 깎아내리고 파헤치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집을 지을 자리를 골라 집을 지었고 자연을 살려가면서 정자(亭子)를 세웠다. 한쪽이 깊으면 돌기둥을 세워 바쳤고 구부러진 나무도 자연스럽게 활용했다. 자연을 내 정원(庭園)으로 삼았고 자연과 더불어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키웠다. 오늘 우리는 어떠한가? 목전(目前)의 이익만 추구하다 재난(災難)을 불러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성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