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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용 칼럼] 소흘읍 산성에 대한 억지주장

- 포천미래포럼 주제발표,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오류 범하지 않길
이희용 기자 / heeyeong1@hanmail.net입력 : 2011년 08월 29일
↑↑ 이희용 칼럼니스트, 본지 자문위원
ⓒ (주)포천신문사
요즘 포천의 자연경관이나 기념물 그리고 문화유산을 근거로 관심을 유도하려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그러나 근거도 없는 이름을 억지로 주장한다고 역사를 새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인지, 수백 년을 이 고장에 살아온 후손의 한 사람으로 마음이 편치 않다.

지난 7월 20일 오후 6시 포천미래포럼과 소흘읍주민자치위원회는 소흘읍주민자치센터 강당에서 ‘고모루성 문화 만들기’를 주제로 콜로키엄을 개최했다는데, 이날 주제발표에서 “고모루성은 경기도문화재(기념물 제185호)로 지정만 된 채 별다른 계획이 마련돼 있지 않아…최근 고구려 관련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여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고모루성이 포천에 있음을 크게 알리고 이에 대한 다양한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다”고 평가했다고 한다.

또한 토론자로 발표한 사람은 “인근에 있는 대학축제인 ‘고모루성 OSAF’에서 함께 할 수 있게 된다면 대학생들과 포천시 사이의 새로운 인연 만들기가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예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세미나나 학회 형식의 이런 발표회에서 경기도 기념물 185호의 명칭하나 제대로 사용하지 않고 근거도 없는 “고모루성”을 운운했다는데 문제가 있다. 사실 기념물로 등재된 산성의 이름은 “포천 고모리 산성”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기념물의 정확하지 않은 명칭이나 확인되지 않은 지명임을 알고도 의도적으로 주제로 선택했다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적어도 주제발표나 토론을 하는 학자라면 자료를 정확하게 인지한 후 오류를 범하지 않는 범위에서 발표를 해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상식인데, 역사나 고고학 비전문가가 증명되지 않은 역사적 기념물의 명칭을 주제로 제시하여 이 내용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언론에 보도 되었다면, 이 행사를 주최한 포천미래포럼이나 소흘읍 주민자치위원회와 여기에 관여한 책임 있는 사람들은 기록에 대한 확인 없이 일을 그릇되게 추진했다는 도의적 책임을 면하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 이미 밝혀진 대로 백제시대 성이 있는 산의 이름이 고지도나 역사서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오래전부터 대부분의 지역사람들이 노고산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럼에도 산성을 지표조사 하면서 산의 이름이 기록에 없다는 것을 근거로 고모리라는 마을 이름을 빌어, “포천 고모리 산성”이라 임의로 명명하였으나, 인근에 있는 직동리나 이곡리에서는 산 이름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고 있고, 현재 소흘읍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원주민과 지역행사에서는 계속 노고산이라 부르고 있어 지명과 관련한 논란이 분분하기도 하다.

그럼 포천시를 대표할만한 지역 리더들이 참석한 콜로키엄에서 주제로 선택된 “고모루성”이라는 이름이 어떤 잘못된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 지난 2001년 단국대학교 매장문화재연구소가 포천군의 용역계약에 의해 2천8백만 원의 경비를 들여 단국대 출판부가 발간한, “포천 고모리 산성 지표조사 보고서”(이하 보고서라 한다) 내용을 요약 정리해서 이해를 돕고자 한다.

당시 소흘읍 고모리 산 64번지 일대에 있는 산성에 대한 축조시기와 성격에 대한 내용은 이렇다. “고모리 산성의 축조시기를 짐작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근거는 수습된 유물이다. 정확한 축조 시기는 발굴조사를 실시해야 분명해 질 수 있으나 수습된 유물의 대다수가 백제 토기로 3세기 후반에서 4세기 전반에 집중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산성의 축조 시기는 3세기 후반으로 축조국가는 백제로 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 한편 고모리 산성에서는 일반적으로 토성이던지 산성에서 흔히 보이는 기와편이 한 점도 수습되지 않았다, 또한 고모리 산성은 현재까지 조사된 백제산성으로써는 가장 빠른 시기에 축조된 산성이기 때문에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다.”(보고서 212-213쪽)

또한 고구려 고모루성이라는 설에 대하여는 “고모리라는 지명과 백제 토기가 많이 나왔다고 하여 광개토왕비문(廣開土王碑文)과 중원고구려비(中原高句麗碑)에 나오는 고모루성(古牟婁城)으로 비정하는데,… 모루(牟婁)가 변하여 모리(毛里)로 변했다는 어학적인 근거가 희박하다. 현지주민들에 전언에 의하면 예전에 이곳에 큰 무덤이 있어 고묘리(古墓里)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나중에 고모리(古毛里)로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고모리란 지명만으로 고모루와 연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보고서214 쪽)”

그리고 고모루성에 파견된 고구려 지방관 겸 군사 지휘자인 수사는 4·5세기 최상위 지방관으로 다수의 성(城)과 곡(谷)을 통솔하였다고 하는데, 고모리에 있는 기념물은 성보다는 책에 가까운 규모가 매우 작은 성으로 밝혀졌다. 또한 고모루성 수사는 고구려에서 중원지역에 이르는 교통로를 장악하고 있었고, 고모루성은 고구려가 중원지역으로 남하하는 요충지인 충주와 멀지않은 지역에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 지배적이다.

그러므로 고모리 백제성을 “고모루성이라고 정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조건을 충족하여야 한다. 첫째 4세기 이전 백제 유물이 출토될 것, 둘째 5세기 이후 고구려 남진 거점의 고구려 유물이 출토될 것, 셋째 5세기 경 고구려 거점성이므로 주변의 여러 작은 성을 통솔할 수 있는 성일 것, 넷째 고구려 남진로 상에 위치하여 특히 충주로 진입하는 길목일 것 등이다. 이러한 조건에 고모리 백제산성을 대입해 보면…거리가 멀다.…고구려 유물은 전혀 출토된 바 없고 백제 유물이 5세기 초까지 계속되고 있다.…고모루성으로 비정하는 견해는 따르기 어렵다.” (보고서 215쪽)

이렇게 소흘읍 노고산에 있는 백제가 축성한 산성이 고구려 고모루성이라는 역사적 기록이나 유물의 근거는 매우 취약하다. 그래서 확인된 역사적 사료가 없는 산성을 가지고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지역축제나 스토리텔링 등의 대상으로 엄청난 예산을 투입한다는 것은 그 의미가 상실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없는 것도 만들어 낸다는 세상이지만, 억지 주장으로 기념물의 정체마저도 만들어 내려고 한다면 아무리 포천이 순박한 사람들이 사는 시골이라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근본을 흔드는 행위를 용납하는 지역은 절대로 아니다.

흔히 말하는 먹물을 앞세워 근거도 없는 ‘고모루성’을 운운하며 포천을 얕잡아보고 그릇된 역사를 가르치려 든다면, 그 거짓으로 인한 시민의 분노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지만 의도된 내용은 실수라 할 수 없다. 그러니 이번 일을 타산지석으로 얄팍한 지식으로 세상을 어지럽히고 시민을 속이려는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오류를 범하는 일이 다시는 없기를 진심으로 충고하는 바이다.

이희용 /
광릉숲 시인, 연극인, 칼럼니스트, 한국스카우트 경기북부연맹 감사, 전 경기도예총부회장, 포천시지역사회복지협의체 초대위원장, 포천시 수능시험장 유치추진위원장, 포천신문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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