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잘난 자의 이기주의가 판친다. 그야말로 신자유주의 가치관이 난무하고 있다. 좋게 이야기하면 잘난 자가 능력을 발휘해서 많은 재화를 벌어들이게 하고 못난 자는 그들이 베푸는 것을 공평하게 나누어 먹으면 된다는 것이다. 좀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면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사회발전을 위해서 생산의 기회를 강한 자에게 빼앗긴 채 그들의 시혜만을 기다리는 존재가 된다.
요즘 서울시는 무상급식 문제로 주민투표를 한다고 야단이다. 곽노현 교육감이 선거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된 후 의무교육 대상의 학생들에게 무상급식을 전면 실시하겠다고 나서자 오 세훈 시장이 이 무상급식이라는 복지정책이 포퓰리즘이라고 거부한 바 있다. 우리는 어려운 시절에 초등학교나 중등학교 시절에 가난한 탓에 꽁보리밥에 김치밖에 담겨있지 않은 도시락을 내놓기가 쑥스러워 하던 슬픈 기억이 있다. 물론 부잣집 아이들은 거창한 도시락 가방이 자신의 브랜드 이미지나 되는 양 뻐기면서 자랑하던 역겨운 기억도 지니고 있다.
어찌 한 교실의 학생들이 도시락의 양극화 현상을 드러내는 것이 교육적이라는 것인가. 어차피 동무이자 앞으로 동기동창으로 평생지기로 살아가야할 아이들의 정서적 상처를 주지 않도록 하는 것이 권력욕에 사로잡힌 정치인들의 구호에 의해서 재단되어야 하는 것인가.
필자는 다른 것은 몰라도 의무교육 대상의 학생들의 급식문제를 정치적인 관점으로 보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이야말로 교육문제까지 정치적 이해득실에 의해서 영향을 주려는 순수하지 못한 정략이라고 생각한다. 부자 아이들까지 무상급식을 하려고 하느냐는 공격은 오히려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것을 빼앗는 것이라는 논리에서 나왔다고 본다. 사실 이렇게 주장하는 한나라당은 부자들의 감세를 추진한 바 있다. 사실 부자들의 자녀에게 점심을 제공하여 생기는 정도의 무상급식에 대한 예산은 부자들이 더 번만큼 내면 되지 않을까.
최근 워렌 버핏이라는 미국 최고의 부호는 오바마를 지지했던 자로 미국 공화당이 공격하는 미국의 재정적자는 부자들의 세금을 증액하는 것으로 해결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부자들이 기업에 투자해서 경제를 활성화시키도록 하자는 주장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한국의 부자들의 행태를 보면 그들이 기부나 세금을 더 많이 내어 가난한 계층을 도와주자는 주장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대기업은 중소기업의 특허를 빼앗고 부품단가를 깎아서 중소기업을 사지로 몰아넣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또는 세금을 정당하게 내어서 국가재정을 튼튼하게 하려는 모습 또한 들어본 바 없다. 어떻게든 세금을 적게 내는 절세가 미덕이라고 알고 얄팍한 로비나 일삼는 것은 삼척동자가 알고 있다.
물론 이번 현대 소유주들이 자신들의 개인자산을 내어서 공익재단을 만든 것은 천만다행한 일이다. 부자들 스스로가 가난한 자들보다 능력이 있고 잘났다고 자랑할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부를 취득할 기회가 주어진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고 스스로를 낮출 줄 알아야 한다. 그들이 내놓는 기부금이나 공익 기금이 가난하고 무능한 자에게 주는 시혜 차원의 선물이라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된다. 오히려 나로 인하여 기회를 상실했거나 경쟁에 밀려서 실패한 자들의 아픔에 대해 미안해하고 진정으로 상생하려는 마음을 가져야할 것이다.
국가는 결코 전면 무상급식이 부자 아이들에게 퍼주는 것이 아니라 부자인 아이들이 가난한 아이들과 똑같은 존재이고 평등한 존재라는 낮춤의 미학을 배우도록 한다면 무엇보다 값진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가난한 아이들이 부유한 아이들보다 못하지 않다는 자긍심과 자신들도 노력하면 부자 아이들과 함께 어께를 마주하는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떳떳함을 가지도록 해준다면 한국의 미래에는 심리적인 양극화는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우리 사회에 메말라가는 겸손의 미덕을 아쉬워하면서 생존경쟁에 눈이 어두운 삶보다 들판의 들꽃의 낮춤의 미학을 “들꽃”이란 시로 노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