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연 선생님이시죠?” “그렇다. 너 홍유정이지.” 오랜 세월이 자났는데도 단박에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네 그렇습니다. 선생님 저 고려대학교 인문학부에 합격했어요. 이 소식을 선생님께 제일 먼저 알려드리려고 전화 드렸습니다.” “진심으로 축하한다. 올해가 하얀 호랑이 해인데 심벌마크가 호랑이인 고려대학교에 합격했구나. 호랑이의 용맹스런 패기로 대학교 생활 잘하기 바란다.”
이상은 2010년 2월에 교사시절 1학년을 담임했을 때의 제자에게서 전화가 걸려와 나눈 대화내용이다. 주제가 ‘방학과제’인데 굳이 오래전 교사시절 담임했던 제자로부터 걸려온 전화 대화내용을 언급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당시 제자 ‘홍유정’은 매우 소심했고,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으려는 의욕이 대단했다. 그래서 담임선생님인 필자가 부여하는 과제는 아주 탁월하게 해 오곤 했고 그때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주 성실하게 학업에 충실했었다. 여름방학이 다가오자 2학기에 실시되는 동시암송대회를 준비하기 위해서 1학년 학생이 암송해야할 동시 42편을 다른 방학과제와 더불어 제시했다. 개학하고 방학과제를 검사하는데 ‘홍유정’제자의 방학과제는 전교적으로 순서를 매긴다고 해도 가장 잘한 방학과제였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지만 버스 정류장에서 학교 교문까지 오는 거리가 500m정도 되는데 길 양편에 있는 모든 가게들을 그림지도로 그려왔던 방학과제가 대표적이다. 아울러 방학 전에 제시했던 42편의 동시도 순서대로 제목, 지은이, 시를 한 글자 빠뜨리지 않고 줄줄줄 외워 내려갔다. 담임인 필자도 그 영특함에 혀를 내둘렀다.
이런 경우 과연 방학과제를 학생 자신이 했느냐 아니면 부모님이 도와줬느냐에 많은 시비가 붙는다. 물론 방학과제는 학생이 자기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맞고 그것이 당연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학생자신이 자기 주도적으로 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에는 부모님이나 다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분의 도움을 받아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방학과제에 대한 시상 때문에 전적으로 부모의 도움으로 방학과제를 한 경우에는 교육적인 지도가 가해져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분의 도움을 받아 방학과제를 해결했더라도 방학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같이 참여했다면 그것만으로도 많은 배움의 기회에 접한 것이고 소정의 교육적인 효과가 있다고 인정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최근 들어 교육적인 사회적인 인프라가 워낙 좋다보니 방학기간 동안에 다양한 체험학습을 권장할 목적으로 방학과제를 제시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모두에서 필자가 언급한대로 방학도 정규교육활동의 연장선에서 본다면 유목적적인 교육활동에 대한 과제가 제시되어야한다고 본다. 과제해결을 위해서 다양한 체험활동을 할 수 있도록 과제가 제시된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방학과제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고 있다. 방학과제를 제시하지 말고 학생 개개인이 해야 할 과제를 정하도록 한 다음에 담임선생님과 협의하여 정하는 방법도 한 방법이다. 이는 교육적인 사회적인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고 손쉽게 학생들이 접근할 수 있다면 가능한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교육적인 사회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지도 않는 상황에서 이런 방법을 택한다는 것은 자칫 교육의 연장선인 방학 동안 학생들을 방치한 것이나 다름없다.
요즈음 방학과제에 대해서도 비중 있게 생각하지 않은 경향이 있다. 방학과제에 대한 관심이 시들어 간다면 한 달 이상 가정에서 지내는 동안 이루어져야 할 교육적인 활동에 대해서 검토할 수 있는 대안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장마와 폭염이 반복되는 상황 가운데서도 머지않아 방학이 끝나고 개학과 더불어 의기양양하게 방학과제물을 들고 등교할 학생들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학생들이 장차 필자의 제자처럼 당당하게 명문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으리라고 예견을 해 본다.
[동시] 방학
흰 구름/뭉게뭉게 피어오르면/친구들 불러 모아/잠자리채 들고/들로 산으로 달려간다./ 잠자리채 휘둘러보나/영악한 잠자리는/저만큼 날아가 있고/못 잡았어도 마냥 신이나/ 온 들판을 뛰어다녀도/피곤한 줄 모른다. 멀리 보이는/동네 굴뚝에서/저녁연기 피어오르면/텅 빈 뱃속에선 시장을 알리는/ ‘꼬르륵’ 소리가/더 이상 잠자리 잡기를 포기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