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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이중희] 아데나워에게서 배우자


이상창 기자 / 입력 : 2011년 08월 11일
↑↑ 이중희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포천신문 자문위원
ⓒ (주)포천신문사
다혈질과 거침없는 행동으로 악명이 높았던 소련의 흐르시초프는 걸핏하면 2차 세계대전으로 두동강이 난 독일을 이렇게 조롱했다.

“독일은 뒤에서 보면 엉덩이가 두개로 갈라져 있고 앞에서 보면 늙수그레한 총리(아데나워)의 성기처럼 축 늘어진 발기불능이란 말이야.”

이러한 모욕적인 조롱을 받으면서도 인내한 서독의 초대총리 아데나워가 1955년 9월 소련과 국교수립을 위해 음흉한 흐르시초프를 만났다. 두 사람은 화해의 손을 내밀어 보았으나 이내 서로의 불편한 심사만을 드러내고 헤어져야 했다.

흐르시초프는 나치 독일의 만행을 꾸짖었고, 아데나워 또한 소련의 붉은 군대도 못지않게 잔인무도한 행위를 저질렀다고 거칠게 항의했기 때문이었다.

독일 연방공화국의 아버지라 불리어진 콘라트 아데나워는 1949년 73세가 되어서야 총리자리에 오른 많은 경험과 경륜이 쌓인 노련한 정치인이였으며, 소련을 혐오했고, 공산주의를 경멸했다. 그는 공산세력과의 평화공존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공산당을 불법화 했다.

그리고 그는 레닌의 이런 말도 잊지 않고 있었다.
“독일을 갖는 자 유럽을 손에 넣는다.”

그는 철저하게 서방정책을 밀고 나갔다. 서유럽의 통합을 위해 프랑스와 화해하려고 온 힘을 쏟으며 정성을 다했다. 또한 이 자유민주주의자 아데나워는 미국의 신뢰를 잃지 않으려고 온힘과 정성을 다했다.

반면에 아데나워는 동구권을 싸늘하게 무시하는 정책을 폈다. 그러자 소련은 중립을 미끼로 동서독을 통일시켜 주겠다는 그럴듯한 통일유혹을 했으나 일언지하에 거절해 버렸다. 서독의 총리가 아니라 연합국의 총리로 불렸던 콘라트 아데나워 그는 무엇보다 국민과 미국을 위시한 서방세계에 무섭게 신의를 지키며 서독을 믿음직스러운 서유럽의 일원으로 자리 잡는데 온 힘을 다해 매진해 나갔다.

그 자신은 이렇게 말했다.
“비스마르크의 장화는 내게 너무 크다.”

그러나 두 지도자의 업적은 곧잘 비교된다. 비스마르크는 수백년 간 분열되었던 독일민족을 통일하여 통일제국을 건설하였고, 아데나워는 전쟁의 페허 위에 자유민주주의국가를 건설하여 국방력을 튼튼히 하여 독일통일의 기초를 튼튼히 하였다.

지금 우리 국민들은 법정에서 죄수들이 김일성과 김정일 만세를 부르는 것을 보고 현 정부에 대하여 불안하고 미덥지 못한 마음 또한 크다 하겠다. 국가안보는 물샐틈없는 대비태세로 임할 일이지 기대 섞인 희망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북한에 관한 한 어떻게 해서든 군사적인 면이나 정신적인 면에서 충분한 억지력을 유지하여 돌발사태에 대비한 후에 6자회담 등의 대화외교를 펴는 것이 상식이 아닐런지, 현 정부는 독일의 아데나워의 정책에서 많은 것을 배웠으면 한다.

이중희 /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민주평통 자문위원(포천시협의회 12기 회장), 한국문협 문단윤리위원, 포천신문 자문위원
이상창 기자 / 입력 : 2011년 08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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