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운동이 건강에 좋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상식이다.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은 앞 다퉈 ‘올레길’, ‘나드레 길’, ‘둘레길’ 등등 다양하고 흥미진진한 이름으로 관광객 유치를 위한 경쟁이 뜨겁다. 그런데 후덥지근한 날씨가 계속되는 경우에는 평상시에 잘 걷는 사람도 걷기를 주저한다. 이번 여름방학을 맞이해 필자는 수원에 소재하고 있는 한국걸스카우트 경기 남부 연맹에서 주관하는 걸스카우트 상급 과정 연수를 받게 되었다.
장거리 승용차 운전이 부담스러워 서울에서 수원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연수 받으러 다니기로 했다. 소위 말하는 BMW(Bus, Metro, Walk)를 이용한 것이다. 전철을 이용해서 수원역까지 내려가서 다시 수원역에서 연수 장소가 있는 한국걸스카우트 경기 남부 연맹까지 20분 정도 걷는다. 평상시에 운동 삼아 걷기 운동도 하는데 마음을 다잡고 걸어서 연수 장소까지 가기로 한 것이다. 막상 걸으려고 하니 10여 년 전 화성에서 근무할 때 출퇴근했던 낯익은 수원역 광장이 개발로 인해 많이 변해 낯설기까지 하여 연수 장소까지 가는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다. 3일 만에 주변 도로의 여건을 자세하게 관찰하면서 길을 찾을 수 있었다.
길을 걷다 보면 다양한 상황을 접하게 된다는 것도 새삼스럽게 느꼈다. 지하보도 계단을 올라가는데 십여 명의 고등학생으로 되어 보이는 학생들이 전철 타는 출입구를 향하여 무리지어 황급히 달려가고 있었다. 옷차림으로 보아 봉사활동을 간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제 우리 사회도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새삼스럽지 않고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 가고 있다. 교실에서만 배우던 학생들이 자의건 타의건 봉사체험을 통해 보람과 긍지를 느끼면서 봉사라는 개념이 내면화 된다면 우리 사회는 한층 더 어려운 이웃을 배려하는 사회가 될 것이고 밝고 건전한 사회가 될 것이다.
조금 더 가니 이른 아침인데도 구멍가게 문이 열려있고 가게 앞에 놓여 있는 의자에 꼬부랑 할머니께서 앉아 계셨다. 앉아 계시는 자체가 힘겨우실 정도로 쇠약하신 할머니이시다. 평상시에는 노인들이 길거리를 지나가도 무의식적으로 지나쳤다. 그런데 오늘따라 나도 머지않아 저 모양 저 꼴이 될 텐데 저렇게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해답은 간단하다. 운동하는 것이다. 나에게 맞는 운동을 함으로써 저렇게 쇠약한 모습은 보이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 우리나라의 경우 2010년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8.7%, 2025년에는 11.4%로 본격적인 고령화 사회로 진입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이는 생산인구가 노인인구를 책임져야하는 사회적 부담이 점차 커진다는 의미이며 국가적으로도 재정적인 부담과 관련된 해결해야할 문제가 발생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저 출산으로 인한 심각한 인구문제가 바로 눈앞에서 어른거린다.
걸으면서 길 주변을 유심히 살펴보니 길 주변에 전개되고 있는 모든 상황들이 사유의 대상이다. 언제 이렇게 한가롭고 자유스런 사유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조금 더 걸으니 차도와 인도 사이에 놓인 경계석의 비좁은 틈바구니에 먹때왈이라는 식물이 자라고 있다. 가꾸어 주는 사람 없어도 튼튼하게 잘 자랐고 심지어는 열매까지 잘 맺혀 익어가고 있었다. 식물도 종족 번식을 위해 하루 종일 쉴 사이 없이 차가 지나다니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자신이 치러야할 생의 과정을 불평불만 없이 충실히 잘 치러 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물에게서도 배울 점이 있다. 사소한 일에도 짜증내고 불평불만을 터뜨리는 사람들에게 큰 교훈인 것이다.
여자고등학교 앞을 지나갔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금남의 구역이었고 안쪽을 들여다보는 자체도 거북스러웠다. 그러나 이제 그런 부담을 느끼지 않을 나이가 되었다. 안쪽을 들여다보니 여자고등학교답게 깔끔하게 조경이 되어 있다. 그래서 교정으로 들어가 교정을 둘러보았다. 여자고등학교는 조경도 깔끔할 뿐만 아니라 교정에 쓰여 있는 구호도 남자고등학교와는 뉘앙스가 달랐다. ‘바른 부덕(婦德)을 익히자’는 등 색다른 구호였다. 여자고등학교는 인생에서 가정주부로서의 소양을 갖출 수 있는 학교다. 이곳에서 제대로 잘 배워준다면 국가의 장래가 더욱 밝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길을 걸으니 후덥지근하고 땀도 나기 시작한다. 높은 건물로 꽉 막힌 길을 걸을 때는 후덥지근하고 땀이 났는데 골목길이나 아래층이 트인 건물 앞을 지날 때면 상큼하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더위를 식혀 준다. 시원함과 상쾌함이 동시에 느껴지면서 한없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고, 바람의 고마움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평상시 고마움에 대한 마음이 내면에서 잠재되어 있고 드러나지 않았는데 시원한 바람을 접하면서 바람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느끼면서 내면에서 움츠리고 있던 고마운 마음이 우러났다. 잠자고 있는 고마운 마음이 일깨워진 것이다.
길을 걸으면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삶 가운데서 큰 보람이다. 걸으면서 핸드폰을 통한 음악 감상 또한 별미다. 요즈음 필자는 김소월시, 김범진곡, 바리톤 백성기가 부른 가곡 ‘삼수갑산’을 처음 접하고 이 곡의 매력에 빠져있다. 어디서 이렇게 좋아하는 가곡을 따라서 부를 수 있단 말인가! 걸으면서 좋아하는 가곡도 부르면서 행복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길은 정녕 행복을 여는 길이리라.
삼수갑산(三水甲山) 나 왜 왔노/삼수갑산이 어디매냐/오고 나니 기험(奇險)하다 아하 물도 많고 산첩첩(山疊疊)이라 /내 고향을 도로 가자 내 고향을 내 못 가네/삼수갑산 멀드라 아하 촉도지난(蜀道之難)이 예로구나/삼수갑산이 어디매냐/내가 오고 내 못 가네/불귀(不歸)로다 내 고향을 아하 새도 날면 떠가리라 아하하/님 계신 곳 내 고향을 내 못 가네 내 못 가네/오다가다 야속하다 아하 삼수갑산이 날 가두었네.
잘 알려진 걷는 효과로는 다이어트 효과, 골다공증 예방, 성인병 예방, 스트레스 해소, 명상 효과 등 다양하다. 프랑스 사상가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는 "나는 걸을 때만 명상에 잠긴다.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고 했다. 이제 여름방학도 거의 절반이 지나갔다. 이렇듯 길을 걸으면서 사유하며 행복을 얻는 좋은 운동을 모처럼의 여름방학 동안에 귀한 자녀들과 함께 실천해 보시기를 학부모님들께 권해 본다.